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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 : 혀의 세계 혀의 세계이송희 바람을 삼키며 건널목을 지났어요찢긴 혀가 나뭇잎처럼 나뒹구는 길모퉁이뜨겁게 달아오른 입이벌레처럼 모여들었죠빈말을 머금은,바늘 돋친 혓바닥 위로표정을 바꿔가면서 떠오른 해의 무늬가붉은 눈 반짝거리며하염없이 따라왔어요숨을 참고 속엣말을 깊숙이 넣어 둔 채길고 짧은 실마리를 힘껏 끌어당길 때입 안에 숨겨 둔 혀가크게 부어올랐어요 이송희 시인 소개와 시 소개이송희 시인 소개 전남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연구재단 박사 후 국내 연수(Post-Doc,)를 마쳤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서울문화재단 문학창love.baula100.com
심승혁 시인 : 정글의 시간 심승혁 시인 : 정글의 시간 죽음을 뒤로 죽음이 이어지는 수풀 틈첫울음이 가느다랗다강한 이빨에게 뜯어먹히는 소리와약하게 퍼지는 울음에도 아랑곳없이미처 감지 못한 눈망울 아래죽음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수백 개의 발걸음이 힘차다태어난다는 것은죽을 수 있다는 것의 시작그토록 살기 위해 울었던 순간도 잠시결국 무너질 끝까지 울음을 멈추고숨죽인 채 살아낸 고단한 살점을들리지도 않던 작은 걸음들에게눈물로 흠뻑 적셔 떼어준다눈은 감기고 점점, 활기 차오르는첫울음이 커질 때쯤마지막 피곤을 땅에 놓는데어딘가 수레바퀴 소리, 참 시끄럽게도돌고 있… 까마귀 ​잠자리 풀잎에 앉은 아래개구리 혀를 쏘려 하고백로 한 마리 부리에 힘을 주는데 ​뒤엉킨 생사의 갈림길에남 좋은 건 못 봐!까마귀 울자, 깍깍백..
임효빈 시 : 나는 날마다 파혼한다 나는 날마다 파혼한다임효빈 헤르만 헤세는 세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고 한다 첫 번째 부인은 사랑의 병에 걸려 죽고 두 번째 부인의 사랑은 헤세답게 식었지만 늙은 헤세는 세 번째에도 사랑을 걸었단다 그는 사랑을 만나기 위해 헤어지고 검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의 사랑은 하얀 드레스에 있었단다 헤세의 사랑은 슬픔에 잠겼고 오래된 사랑은 자정을 위해 스스로 불타버렸단다 나비 날갯짓처럼 사랑을 위해 이혼한 헤세 나비와 헤세는 사랑을 모았지만 꽃술에 걸린 그녀들의 사랑은 꽃만을 기억했단다 꽃이 궁금한 사람들이 헤세에게 물으면 헤세는 주저 없이 어떤 사랑도 첫사랑이라 말했단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제의 나와 파혼했지만 언제까지 파혼해야 나를 만날 수 있을지 헤세에게는 묻지 않았다 -임효빈, 중 "나..
임효빈 시 : 도서관의 도서관 도서관의 도서관임효빈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으나 말 한마디 못했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서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있다 -임효..
나태주 시인 : 새사람 나태주 시인 : 새사람 새사람나태주 그럼요날마다 새날이고봄마다 새봄이구요사람마다 새사람 그중에서도 당신은새봄에 새로 그리운 사람 중에서도 첫 번째새사람입니다
2월의 시 5편 2월의 시 5편 2월 예찬 양광모 이틀이나 사흘쯤더 주어진다면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니2월은 시치미 뚝 떼고방긋이 웃으며 말하네겨울이 끝나야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봄이 시작되어야겨울이 물러가는 거란다 2월의 다짐 윤보영​ 지난해 2월에는고맙다는 말을 못했는데올해 2월 마지막 날은고맙다는 인사를해야겠습니다혹시라도 한 달내내 행복해서지난해처럼잊고 보내면 내년에는두 배로 하겠습니다. 2월에는 이명희 ​매운바람 속에서살며시 손잡아주며아직 이라는 희망너그럽게 허락하는 2월에는그대 안부가 그립습니다시간의 갈피에서더미로 모인 그리움들말없이 가슴을 풀어놓고경계선을 허무는 2월에는그대 소식이 궁금합니다결빙 속에서도불꽃처럼 심장을 덮혀꽃을 피워내는 2월에는잊혀지지 ..
도종환 시인 : 겨울 저녁 도종환 시인의 시 겨울 저녁도종환 찬술 한잔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겨울밤은 좋다 그러나 눈 내리는 저녁에는 차를 끓이는 것도 좋다뜨거움이 왜 따뜻함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며 찻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는 겨울 저녁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고 쓰던 붓과 화선지도 밀어놓고 쌓인 눈 위에 찍힌 산짐승 발자국 위로 다시 내리는 눈발을 바라본다대숲을 흔들던 바람이 산을 넘어간 뒤 숲에는 바람 소리도 흔적 없고상심한 짐승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여러날그동안 너무 뜨거웠으므로딱딱한 찻잎을 눅이며 열기를 낮추는 다기처럼나도 몸을 눅이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도종환, 사월바다,(창비, 2016)> 중 "겨울 저녁"- 겨울 나기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봄에 관한 시 7편 봄에 관한 시 7편 윤동주, 이해인, 정호승, 김용택, 나태주, 안도현 봄 윤동주​우리 애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 소올소올아저씨 해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봄 / 윤동주​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가차운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즐거운 종달새야,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개나리이해인 눈웃음 가득히봄 햇살 담고봄 이야기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잎새도 달지 않고달려나온네 잎의 별 꽃개나리꽃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길게도늘어뜨렸구나내가 가는 봄맞이 길앞질러 가며살아 피는 기븜을노래로 엮어내는샛노란 눈웃..
반칠환 시인 : 새해 첫날 새해 첫날반칠환 황새는 날아서말은 뛰어서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굼벵이는 굴렀는데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새해 첫날"-*광화문 글판 2012년 겨울편으로 선정
장석주 시인 : 새해 첫날 새해 첫날장석주 새해 첫날가장 좋은 것은 잠드는 것 하얀 설의(雪衣)를 입고깊은 정적으로 솟아 있는 산! 그래도 살아있는 것은 움직여야 한다. 먹이를 찾아 헤매이는새 몇 마리 -장석주, 스무 살은 처음입니다, (지혜, 2018)>중 "새해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