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시인 소개와 시 소개

강은교 시인 소개
1945년 12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 소개
너를 사랑한다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 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 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
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에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를 말하면서
올 대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동백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별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상에 내려서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는다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
서시
이제 눈뜨게 하십시오
눈떠 저희의 손과 발
바람 속에 흔들게 하십시오.
수천킬로미터의
들판을 지나
들판에 겹겹이 앉아 있는 노을들과
굽이치는 죽음을 지나
당신이시여
검붉은 피 여직 흐르는
슬픈 가슴이시여
여기엔 머뭇거리는 길뿐이오니
여기엔
눈먼 안개와
허우적이는 그림자들뿐이오니
아,이제 일어서게 하십시오.
일어서 당신의 깊은 가슴 속
저희가 헤엄치게 하십시오
저희의 피가 수평선을 이루고
저희의 흐느낌이
함께함께
출렁이게 하십시오
수평선
이제는 돌아갑시다
돌아가 깊이깊이
어둠에 얼굴을 담급시다
수만 주름살 가만가만
몸 흔드는 바닷가
철없이 나와 앉은 피안의 등불들
거품으로 거두고
큰 소리 한 번 외쳐 봅시다
부서지는 것은
파도만은 아니리
부서지면서 온전한 것
또한 바다만은
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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