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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 : 몇 번의 겨울 몇 번의 겨울천양희 하늘 추워지고 꽃 다 지니온갖 목숨이 아까운 계절입니다 어떤 계절이 좋으냐고 그대가 물으시면다음 계절이라고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봄이라고아주 평범한 말로마음을 움직이겠습니다 실패의 경험이라는 보석이저에게는 있습니다 내가 간절한 것에끝은 없을 것입니다 -천양희,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중
고철 시인 : 마당에 앉아 있으면 마당에 앉아 있으면고철 별이 찾아오는 시간은 고요하다 달 찾아오는 시간은 더 고요하다 다저녁 마당에 앉아 있으면 그걸 금방 안다눈 감고 있으면 고요하다 귀 감고 있으면 더 고요하다 천 년이 그랬던 것처럼 고요가 시끄러운 적은 없었다저쪽에는 저쪽의 고요가 있다 이쪽에는 이쪽의 고요가 있다 저 산에는 저 산의 새가 있다 이 산에는 이 산의 새가 있다마당에 앉아 있으면 안다성공하지 못한 혁명군이 울면서 지났을 테고파랑새가 파랑(波浪)을 견디며 지났을 테고대포나 수류탄도 지났을 테고역병의 팬-데-믹 같은 녹두꽃 지났을 테고마당에 앉아 있으면 안다그저께같이 개망초꽃 피었다 내 몸에도 고요가 생겨서인지 소나기 구르는데도 참견하지 않았다 다소 쓸쓸하지만 나는 마당하고 고요가 참 좋다 고철의 『극단적 흰빛..
바람에 관한 시 6편 바람에 관한 시 바람의 두께안도현 씨근덕씨근덕 그렇게도 몇날을 울던제 울음소리를 잘게 썰어 햇볕에다 마구 버무리던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때맞춰 배롱나무는 달고 있던 귀고리들을 모두 떼어냈습니다울음도 꽃도 처연한 무늬만 남았습니다 ​바람의 두께가 얇아졌습니다 ​- 안도현,『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2004) ​ 바람의 길 조용미 ​창 밖에 바람이 불고 있다웅 웅불길하게, 지상의 모든 전깃줄을 다 쓰다듬으며바람은이승의 옷자락을 흔들어대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가창 밑에서 휙 솟았다 날아간다 ​이런 날이면 바람의 길을 묻는 자들이길가에 무리지어 나와우두커니 서 있다가집으로 들어가기도 할 것이다 ​아주 높은 곳에서바람의 길을 바라보고 있는 자가 있다바람의 길 저쪽에나를 아는 누가..
바람에 관한 시 바람에 관한 시 바람 곽재구 바람이사스레피 꽃 자주색 가지에 앉아박하사탕 두 알 줄 터이니방금 쓴 시를 다오 한다나는 박하사탕 두 알과 시를 바꾸었는데강변 토끼풀 꽃들이 그것을 알고주세요 주세요 하얀 손바닥을 내미는 것이었다 ​- 곽재구,『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문학동네, 2019) 바람에게 말한다 김남조 ​ 바람은 안 보인다 하는가나뭇잎 수런거림이바람의 모습강기슭 잔물결은바람의 문양앞뒤좌우 바람손님이니 나는바람과의 동거여라 ​바람에게 말한다긴 세월 바람 있어 환하게 잘 지냈는데오늘도 눈 밝고 귀 밝아바람을 알아보니지극 감사하다고 ​바람에게 말한다세상에 못다 갚을 내 모든 은혜의 빛을바람에게 물려줄 일미리 사죄한다고바람과 살았으니 바람 외엔상속자가 없다고 ​- 김남조,『심장이 ..
김종삼 시 : 묵 묵화 墨畵 김종삼​물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오세영 시 : 너의 목소리 너의 목소리 오세영 너를 꿈 꾼 밤문득 인기척에 잠이 깨었다문턱에 귀대고 엿들을 땐거기 아무도 없었는데베게 고쳐 누우면지척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나뭇가지 스치는 소맷깃 소리 네가 왔구나산 넘고 물 지나해 지지 않는 누런 서역 땅에서나직이 신발 끌고 와 다정히 부르는 목소리오냐 오냐 안쓰런 마음은 만릿길인데황망히 문을 열고 뛰쳐나가면내리는 가랑비후두둑
기형도 : 비가 2, -붉은 달- 비가 2 ---붉은 달​ 기형도​ 1​그대, 아직 내게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짧게 말하였다. 하늘나라의 달. ​​2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감상의 망토 속에서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너는 ..
마당에 앉아 있으면 : 고철 시인 마당에 앉아 있으면 고철 별이 찾아오는 시간은 고요하다달 찾아오는 시간은 더 고요하다다저녁마당에 앉아 있으면 고요하다 눈 감고 있으면 고요하다귀 감고 있으면 더 고요하다천년이 그랬던 것처롬고요가 시끄러운 적은 없었다 저쪽에는 저쪽의 고요가 있다이쪽에는 이쪽의 고요가 있다저 산에는 저 산의 새가 있다이 산에는 이 산의 새가 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안다 성공하지 못한 혁명군이 울면서 지났갔을테고파랑새가 파랑(波浪)을 견디며 지났을 테고대포나 수류탄도 지났을 테고역병의 펜-데-믹 같은 녹두꽃 지났을 테고 마당에 앉아 있으면 안다 그제께같이 개망초꽃 피었다내 몸에도 고요가 생겨서인지소나기 구르는데도 참견하지 않았다다소 쓸쓸하지만나는 마당하고 고요가 참 좋다
아무르 강가에서 : 박정대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그대 떠난 강가에서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 밑으로는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 밑의 어둠내 머리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그대 떠난 강가에서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맹이 하나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속에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
박민설 작가 : 씩씩한 철학담론 '설렘병법' 씩씩한 철학담론 '설렘병법' ‘설렘’ 과 ‘병법’ 박민설 작가가 말하는 설렘이란 무엇일까요? 또 병법이란 무엇인가요? 전쟁의 기술 아니던가요? 그러나 그 유명한 ‘손자병법’은 단지 전쟁의 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갈등을 다루는 사고방식과 전략적 지혜’를 담은 철학서에 가깝다고 합니다.(지식백과 참조) 책을 읽기 전 설렘이란 ‘기쁨’을 느낄 때 ‘설렘’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영혼의 기쁨!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 그래서 박민설 작가가 말하는 ‘설렘 병법’은 곧 ‘나의 영혼이 기쁨을 느끼는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전율, 소실점, 오늘, 인류 단위 꿈, 깨달음, 혁명, 나를 우주까지 확장하는 일, 내가 우주가 되는 것, 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 내가 신이 되는 것, 데미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