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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 귀뚜라 귀뚜라미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정호승 시 : 새벽 눈길 새벽 눈길정호승 눈길을 걸을 때에는 눈을 밟지 않아야 한다 특히 첫눈 내린 길을 걸을 때에는 첫눈을 밟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걸을 때에는 혼자 걷지 않도록 조심ㅡ해야 한다 공연히 눈길에 심장을 버리고 저 혼자 서럽게 울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걸을 때에는 다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눈길에 더러운 내 발자국은 남기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걸을 때에는 코트 깃을 세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바라보면서 바람에 툭툭 눈 뭉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흰 눈을 떨치고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정호승, 눈길 걷는 법-
천양희 시 : 몇 번의 겨울 몇 번의 겨울천양희 하늘 추워지고 꽃 다 지니온갖 목숨이 아까운 계절입니다 어떤 계절이 좋으냐고 그대가 물으시면다음 계절이라고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봄이라고아주 평범한 말로마음을 움직이겠습니다 실패의 경험이라는 보석이저에게는 있습니다 내가 간절한 것에끝은 없을 것입니다 -천양희,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