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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관한 시 5편

 

 

1월 시

도종환

 

시작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설렘을 안겨줍니다.

 

첫걸음을 내딛는 아가처럼

살며시 조심스럽게 1월을 시작합니다.

 

 

 

1월에 관한 시

 

 

 

 

 

 

새해 아침에

정연복

 

 

인생은 더러 쓸쓸해도

참 아름다운 것

 

벌써 오십 년을

넘게 살고서도

 

새해는 맞이할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

미묘한 떨림이 있는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꿈틀대기 때문

 

내가 보듬어야 할 가족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생각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1월의 시

이해인

 

첫 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 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코 속에

나 혼자 감당 못할

한 방울의 피아 같은 아픔도

눈밭에 다 쏟아 놓고 가라

 

부디 고운 저 분홍 가슴의

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1월의 아침

허형만

 

세월의 머언 길목을 돌아

한줄기 빛나는 등불을 밝힌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아직은 햇살도 떨리는 1월의 아침

뜨락의 풀뿌리는 찬바람에 숨을 죽이고

저 푸른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살아갈수록 사람이 그리웁고

사람이 그리울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우리네 겨울의 가슴,

 

나처럼 가난한 자

냉수 한 사발로 목을 죽이고 깨끗해진 두 눈으로

신앙 같은 무등이나 마주하지만

나보다 가난한 자는

오히려 이 아침 하느님을 만나보겠구나.

 

오늘은 무등산 허리에 눈빛이 고와

춘설차 새 잎 돋는 소리로

귀가 시린 1월의 아침

우리의 기인 기다림은 끝나리라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땅도 풀리고

꽃잎 뜨는 강물도 새로이 흐르리라

우리의 풀잎은 풀잎 기리 서로 볼을 비비리라

 

아아, 차고도 깨끗한 바람이 분다

무등산은 한결 가즉해 보이고

한줄기 사랑의 등불이 흔들리고 있다.

 

 

 

 

 

 

 

1월의 노래

김명리

 

이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새해 첫 아침인사를 건네는 새의 부리는

취주악기처럼 뽀얀 젖은 음률 위에 떠 있네

 

어린아이 연분홍 손톱 속의 반달만 하게

이제 방금 돋아난 홍매화 잎사귀

 

수줍게 차오르던 푸른 수액이

 

번쩍

번쩍

 

눈 쌓인 앞뒷산 연봉들을 차례로 들어 올리고

 

다만 운둔하여

야당스레 치장한 지난 슬픔을

 

화염에 ㅎ휩싸이듯

 

나의 봄은 저 장렬한 붉은 매화성(梅花聖)에

홀로 늦도록 귀 적실테니

 

오너라, 삼백예순 다섯 날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여

 

다시없이 섧도록 풀어지며 열어젖히는

또 한 마리 진흙소의 더없이 높고도 쓰라린 발걸음으로!

 

 

 

 

 

 

 

 

1월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신의 캔버스

산도 흭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틔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 끝에서

바라면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님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서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새해 아침에

박노해

 

새해에는 조금 더

침묵해야겠다

 

눈 내린 대지에 선

벌거벗은 나무들처럼

 

새해에는 조금 더

시린 겨울 하늘처럼

 

그 많은 말들과 그 많은 기대로

세상에 새기려 하는 대분자들은

눈송이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려도

 

보라, 여기 흰 설원의 지평 위에

새 아침의 태양 하나 품고 있지

 

우리가 세우려 한 빛나는 대문자들은

내 안에 새겨온 빛의 글자로 쓰이는 것이니

 

새해 아침에

희망의 무게만큼 곧은 발자국 새기며

다시, 흰 설원의 아침 햇살로 걸어가겠다

 

 

 

 

 

 

 

 

 

 

정월의 노래

신경림

 

눈에 덮여도

풀들은 싹트고

얼음에 깔려서도

벌레들은 숨 쉰다

 

바람에 날리면서

아이들은 쉬 놀고

진눈깨비에 눈 못 떠도

새들은 지저귄다

 

살얼음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사랑하고

손을 잡으면

숨결은 뜨겁다

 

눈에 덮여도

먼동은 터오고

바람이 맵잘수록

숨결은 더 뜨겁다

 

 

 

 

 

 

 

 

 

정월 일기

문정희

 

 

비로소 우리들의 침묵이

거짓임을 알았다

매일 저녁 그대가 만취하여

돌아오는 이유도

 

왜 시가 암호처럼 어려워야 하며

신문은 조석 없이 휴지가 돼버리는가를

 

사랑하는 어머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여정은

이 어두움과 배고픔을 참는 일이 아니고

그대 품에 온몸으로 쓰러지는 일인가

 

식어버린 가슴을 부끄러이 깨워

바람 키우는 숲이 되는 일인가

단 두 개를 못 가져서

소중한 목숨

 

소처럼 굴레 쓰고는

그 목숨의 비밀을 실천할 수 없어

허리 부러진

슬픈 어머니

 

흐르고 흐르면 큰 강이 된다는

그 평범한 물이나 될까

 

 

 

 

 

 

 

 

 

1월 

신달자

 

 

때는 새벽

1월의 시간이여. 걸어오라

문 밖에 놓인 냉수 한 그릇에

발 담그고 들어오면

포옥 삶아 깨끗한 새 수건으로

네 발 씻어 주련다

자세는 무릎을 꿇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도

환히 미소 지리니

나의 두 손은 잠시

가슴에 묻은 채 쉬리라.

 

 

 

 

https://youtu.be/K_0t4WUegIw?si=3jO2GOb2XhNoG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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