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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 소개와 시 소개

나희덕 시인 소개

 

 

나희덕(羅喜德, 1966년 2월 8일~)은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1년~2018년)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9~)로 재직 중이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창작과 비평》,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998년 제17회〈김수영문학상〉, 2001년 제12회 〈김달진문학상〉, 제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 부문, 2003년 제48회〈현대문학상〉, 2005년 제17회〈이산문학상〉, 2007년 제22회〈소월시문학상〉, 2010년 제10회 〈지훈상〉 문학 부문, 2014년 제6회 〈임화문학예술상〉, 제14회 미당문학상, 2019년 제21회 백석문학상[1]을 수상했다.

 

 

 

나희덕 시인 소개

 

 

 

 


시집


《뿌리에게》(창작과비평사, 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비평사, 1994)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1997)

 

 

 
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시인의 세번째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를 문학동네포에지 43번으로 다시 펴낸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간명하고 절제된 언어”(김진수)로, 그러나 커져가는 세계의 균열을 결코 보아 넘기지 않는 강건함으로 달려온 그다. 오래 사랑받았고 여전히 생생한 이 시집을 다시 펴냄은 서정마저 불온하다 의심받는 지금의 시대에 ‘제 단단함의 사슬’로 지켜온 그의 엄격이 기실 안는 품임을, 잡는 손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일이다.
저자
나희덕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02.15


《어두워진다는 것》(창작과비평사, 2001)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야생사과》(창비, 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그녀에게》(예경, 2015)

 

 

 
그녀에게
나희덕 시인이 등단 26년 만에 낸 첫 시선집. 그동안 발표해온 시집들과 2014년 미당문학상 수상작「심장을 켜는 사람」을 비롯한 신작시들 가운데서 ‘여성성’을 주제로 엄선된 작품을 실었다. 선별된 시들의 내면풍경과 닮아 있는 회화 작품들은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화가들-지지 밀스, 카렌 달링, 엘리너 레이, 니콜 플레츠-이 영어로 번역된 시인의 시를 읽고, 깊은 공감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한다.
저자
나희덕
출판
예경
출판일
2015.05.18

 

 


《파일명 서정시》(창비, 2018)

 
파일명 서정시
2014년 임화문학예술상 수상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이후 나희덕 시인이 4년 만에 펴내는 여덟 번째 시집 『파일명 서정시』.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30년간 투명한 서정과 깊은 삶의 언어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저자의 시세계는 최근작들을 통해 변모와 전환을 이루어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대 인도의 탄센 설화,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를 사찰한 기록,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쁘리모 레비의 증언,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 끌라우디아 요사 감독의 영화, 공동체주의자 찰스 테일러 등 다른 장르의 텍스트를 재구성해내며 블랙리스트나 세월호사건과 같이 ‘지금-여기’에서 발생하는 비극과 재난의 구체적 면면을 시 속으로 가져왔다. 삶의 숱한 참혹과 어이없는 죽음들 앞에서 시인은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무엇도 말할 수 없다는 절망감 사이에서 어떤 말도 무의미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저자는 사랑과 생명력으로 가득한 낯익은 세계에서 벗어나 거칠고 직설적인 어법으로 존재의 아픔과 곳곳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낱낱이 헤집어내면서 슬픔의 힘으로 죽은 자를 불러내고, 비극을 움켜쥐고, 폭력을 직시한다.
저자
나희덕
출판
창비
출판일
2018.11.15

 

 

 

시 소개

 

 

그의 사진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있는 물기를 거두어 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며 거실에 들어서는 날들,

그 고요 속에서

겨울 열매처럼 뒤늦게 익어가는 것도 있으니

평화는 그의 사진과 함께 늙어간다

모든 파열음을 흡수한 사각의 진공 속에서

그는 아직 살고 있는가

마른 잠자리처럼 액자 속에 채집된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그너나

파도소리 같은 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웃고 있지만

액자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볕이 환하게 드는 아침에는 미움도

연민도 아닌 손으로 사진을 닦기도 한다

먼지가 덮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걸레가 닦으려는 게 무엇인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 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 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 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빛마저 곱습니다.

 

 

 

 

 

 

 

 

 

 

 

못 위의 잠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제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하나,

 

 

 

 

 

 

 

 

 

 

 

빈 의자

 

 

나는 침묵의 곁을 지나치곤 했다.

 

노인은 늘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무언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

 

침묵의 모서리를 쪼다가 날아갈 뿐이었다

 

움직이는 걸 한 번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몸 절반에는 아직 피가 돌고 있을 것이다.

 

축 늘어뜨린 왼손보다

 

무릎을 짚고 있는 오른손이 그걸 말해준다.

 

손위에 번져 가는 검버섯을 지켜보듯이

 

그대로 검버섯으로 세상 구석에 피어난 듯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다는 일만이

 

그가 살아 있다는 필사적인 증거였다.

 

어느 날 그 침묵이 텅 비워진 자리,

 

세월이 그의 몸을 빠져나간 후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빈 의자에는

 

작은 새들조차 날아오지 않았다.

 

 

 

 

 

산딸기 익을 무렵

 

 

아기를 들쳐 업은 한 여자의

 

흙 묻은 발꿈치를 따라 걷다가

 

나는 보았네

 

숨어서 익어가는 산딸기를

 

숨어서 도란거리는 지붕들을

 

입 맞출 수도 없이 낮은 곳에 피어나

 

잎새 뒤에 숲 뒤에 숨은

 

작은 마을을

 

 

등에 업힌 아기가 울고

 

그 울음에 산딸기 좀 더 익으면

 

땅거미가 내려와 붉은 열매를 감추는 저녁

 

 

흙 묻은 발꿈치를 따라 걷다가

 

나는 들었네

 

산딸기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무사하라 무사하라 부르는 그 노래를

 

녹슬어가는 함석지붕 아래서

 

나는 들었네

 

 

 

 

 

 

서 시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흔들리는 것들

 

 

저 가볍게 나는 하루살이에게도

 

삶의 무게는 있어

 

마른 쑥풀 향기 속으로

 

툭 튀어 오르는 메뚜기에게도

 

삶의 속도는 있어

 

코스모스 한 송이가 허리를 휘이청 하며

 

온몸으로 그 무게와 속도를 받아낸다.

 

어느 해 가을인들 온통

 

들리는 것 천지 아니었으랴

 

바람에 불려 가는 저 잎새 끝에도 온기는 남아 있어

 

생명의 물기 한점 흐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