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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관한 시 9편

 

9월에 관한 시 9편

 

 

 

 

 

구월이 와도

 

이재무 ​


구월이 와도 멀어진 사람 더욱 멀어져 아득하고

가까운 사람의 눈길조차 낯설어가고

구월이 와도 하늘은 딱딱한 송판 같고

꽃들은 피면서 지기 시작하고

마음의 더위 상한 몸 더욱 지치게 하네

구월이 와도 새들의 날개는 무겁고

별들은 이끼 낀 돌처럼

회색의 도화지에 박혀 빛나지 않고

백지 앞에서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이제는 먼 곳의 고향조차 그립지 않네

구월이 와도 나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가는 세월의 앞치마에 때만 묻히니

나를 울고 간 사랑아.

나를 살다간 나무야

꽃아 강물아 달아 하늘아

이대로 죽어도 좋으련, 좋으련 나는 ​








9월과 뜰

 

오규원 ​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뜰 한켠 까자귀나무

검은 그림자가

퍽 엎질러져 있다 그곳에
지나가던 새 한 마리

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 쉬고 있다 ​

 

 

 

 

 

 

 

 

9월 첫날의 시 ​

 

정연복


어제까지 일렁이는

초록물결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은 누런 잎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의 강물 따라

늘 그렇듯 단 하루가

지나갔을 뿐인데

하룻밤 새 성큼

가을을 데리고 온

9월의 신비한 힘이

문득 느껴진다 ​



 

 

 

 

 

 

9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

대 9월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

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으로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9월 

 

문인수 ​

 

무슨 일인가, 대낮 한차례 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 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9월

 

이외수 ​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가을역 투명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 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두겠네 ​


 

 

 

 

 

 

 

9월에 꿈꾸는 사랑 ​

이 채

 

날개는 지쳐도

하늘을 보면 다시

날고 싶습니다

생각을 품으면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다지면

용기가 생기지요

단 한번 주어지는

인생이라는 길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끝까지 걷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심어 놓은

한송이 한송이의 꿈

어떤 빛깔로 익어가고 있을까요

가슴은 온통 하늘빛으로 고운데

낮아지는 만큼 깊어지는 9월

한층 겸허한 모습으로

내 아름다운 삶이여

훗날 알알이 탐스런

기쁨의 열매로 오십시오 ​  ​

 

 




9월

 

오세영 ​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


 





9월의 시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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