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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에 관한 시 10편

여름비에 관한 시 소개

 

 

소나기

 

곽재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 쉼을 하다가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비 갠 여름 아침

 

김광섭

 

비가 갠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여름비 한 단

 

고영민

 

 

마루에 앉아

여름 비를 본다

발밑에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 단

열무 한 단

부추 시금치 한 단 같은

그리움 한 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 놓은

내 손 한 묶음의 크기

 

 

 

 

 

 

 

 

 

여름 비

 

이성선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 소리

후두둑

문밖을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

 

 

 

 

 

 

 

 

 

 

 

장대비 내립니다

 

양재건

 

꼬두새벽부터 장대비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속 시원하냐 하며

으스대듯 내립니다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강바닥을 위해

 

시름의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

환자들을 위해

너희들 울음 쌓느라 애쓰고 애썼다며

으스대며 장대비 시원하게 내립니다

 

하나에도 벅차고

지키기 힘든 사랑도

장대비 같이 와 하며

몰려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 비

 

박인걸

 

 

나뭇잎 위로

빗방울 뛰어가는 소리에

 

그대 걸어오시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어느 해 여름

아직 비가 그치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고

작은 여운을 남기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시던

당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긴긴 기다림에

아득하기만 했던 당신이

느닷없이 오시던 날

 

나는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여름비 내리는 날이면

그날의 추억을 되짚으며

 

행여 당신이 오시지 않을까

비를 맞으며 서있습니다

 

 

 

 

 

 

 

여름날 갑자기 내린 소낙비

 

용혜원

 

 

하늘비 난데없이

먹구름이 마구 모려 들어

머리에 머리를 맞대더니

성이 났나 보다

골이 터지게 싸우는 듯이

천둥 번개가 사납게 치더니

흠씬 두들겨 맞아

울화가 치밀었는지

울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신이 나도록 울기를 시작했다

한참 울고 나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먹구름 사이에 생긋 웃듯이

한 줄기 햇살이 비춰온다

 

 

 

 

 

 

 

 

그 여름의 비

 

박미리

 

따닥따닥 자작자작

타드는 장작 같은 저 빗소리

 

흙이 파이도록 솟대를 꽂고

녹음이 우짖도록 애무한 후엔

저 고운 노래도 그쳐지겠지

 

내 마음 다독이던

님의 손길처럼 하염없는 너

네 노래에 소르르 잠들고 싶어

 

분꽃 과꽃 채송화꽃 곱던

그 여름날, 청춘의 뜨락을 적시던

그 빗소리 그 불꽃 소리

 

꽂혀 드는 솟대를 타고

비의 리듬을 타고 우레처럼

너를 찾는 여름비, 그 꿈길이여

 

 

 

 

 

 

 

 

여름 비

정일근

 

 

은현리 대숲이 비에 젖는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잉크병에

녹색 잉크가 그득해진다

죽죽 죽죽죽 여름비는 내리고

비에 젖는 대나무들

몸의 마디가 다 보인다

사랑은 건너가는 것이다

나도 건너가지 모새

내 몸에 남은 마디가 있다

젖는 모든 것들

제 몸의 상처 감추지 못하는 날

만년필에 녹색 잉크를 채워 넣는다

오랫동안 보내지 못한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사람

푸른 젖 줄 뜨겁게 적어놓고

내 마음 오래 피에 젖는다

 

 

 

 

 

 

비의 냄새 끝에는

 

이재무

 

여름비에는 냄새가 난다

들쩍지근한 참외 냄새 몰고 오는 비

멸치와 감자 우려낸 국물의

수제비 냄새 몰고 오는 비

옥수수기름 반지르르한

빈대떡 냄새 몰고 오는 비

김 펄펄 나는 순댓국밥 내음 몰고 오는 비

아카시아 밤꽃 내 흩뿌리는 비

청국장 냄새가 골목으로 번지고

갯비린내 물씬 풍기며 젖통 흔들며 그녀는 와서

그리움에 흠뻑 젖은 살 살짝 물었다 뱉는다

온종일 빈집 문간에 앉아 중얼중얼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혼잣소리 내뱉다

신작로 너머 홀연 사라지는 하지의 여자

 

 

 

https://youtu.be/vZ52Irg9sqw?si=oM0Q-Ge8ArNw6F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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