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시인 소개
임화(林和(문화어: 림화), 1908년 10월 13일 ~ 1953년 8월 6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이며 문학평론가, 정치인(소설가, 영화평론가, 영화배우, 연극배우 등으로도 잠시 활약.)이다.
대한제국 한성부(지금의 대한민국 서울) 출신이며, 본명은 임인식이며, 아호는 쌍수대인(雙樹臺人), 성아(星兒), 청로(靑爐)이다. 그 외에도 '임화'(林華), '김철우'(金鐵友) 등의 필명을 사용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의 멤버(카프 서기장 역임)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건국준비위원회 활동, 남조선로동당 창당 활동 등에 참여했다.
1947년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 남북 협상에 참여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하였으나 종전(휴전)된 직후인 1953년 8월 6일에 지난날 구 남로당 중심 인물이었던 이들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서 ‘미제간첩’ 관련 혐의로 인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형 집행되었다.
시 7편 소개
너 어디 있느냐
아직도 이마를 가려
귀밑머리를 땋기수줍어 얼굴 붉히던 너는
지금 이 바람찬 눈보라 속에
무엇을 생각하여 어느 곳에 있느냐
머리가 절반 흰아버지를 생각하여
바람 부는 산정에 있느냐
가슴이 종이처럼 얇아
항상 마음 아프던
엄마를 생각하여 해 저무는 들길에 섰느냐
그렇지 않으면 아침마다 손길 잡고 문을 나서던
너의 어린 동생과 모란꽃 향그럽던 우리 고향집과
이야기 소리 귀에 쟁쟁한
그리운 동무들을 생각하여
어느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느냐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밤길
바람
눈보라가 친다
앞길 먼 산
한울에
아무것도
안보이는 밤
아 몹시 춥다
개 한 마리 안짖고
등불도 꺼지고
가슴 속
숲이
호을노
호득이는 소리
도깨비라도 만나고 싶다
죽는게 살기보다도
쉬웁다면
누구가
벗도 없는
기피은 밤을...
참말 그대들은 얼마나 갔는가
발자욱을
눈이 덮는다
소리를 하면서
말소를 듣재도
자꾸만
바람이 분다
오밤길을 걷는 마음...
네 거리의 순이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
그러면, 내 사랑하는 젊은 동무,
너, 내 사랑하는 오직 하나뿐인 누이동생 순이,
너의 사랑하는 그 귀중한 사내,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
그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어디서 온단 말이냐?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 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였지!
그리하여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픈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 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
겨울날 찬 눈보라가 유리창에 우는 아픈 그 시절,
기계 소리에 말려 흩어지는 우리들의 참새
너희들의 콧노래와 언 눈길을 걷는 발자욱 소리와 더불어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청년과 너의 따뜻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청춘은 참말로 꽃다왔고,
언 밤이 주림보다도 쓰리게 가난한 청춘을 울리는 날,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따뜻한 품속에서 안아주던 것은 오직 하나 거리에서 만나, 거리에서 헤어지며, 골목 뒤에서 중얼대고 일터에서 충성되던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정열 그것이었다.
비할 데 없는 괴로움 가운데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났더냐?
그러나 이 가장 귀중한 너 나의 사이에서
한 청년은 대체 어디로 갔느냐?
어찌 된 일이냐?
순이야, 이것은…….
너도 잘 알고 나도 잘 아는 멀쩡한 사실이 아니냐?
보아라! 어느 누가 참말로 도적놈이냐?
이 눈물 나는 가난한 젊은 날이 가진
불쌍한 즐거움을 노리는 마음하고,
그 조그만, 참말로 풍선보다 엷은 숨을 안 깨치려는 간지런 마음하고,
말하여 보아라, 이곳에 가득 찬 고마운 젊은이들아!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내의 연인아!
생각해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젊은 날을 부지런한 일에 보내던 그 여윈 손가락으로 지금은 굳은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또 이거 봐라, 어서.
이 사내도 네 커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고는 때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튜럭"처럼 길거리를 휘몰아간다.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예 아니냐!
어서 너와 나는 번개처럼 두 손을 잡고, 내일을 위하여 저 골목으로 들어가자.
네 사내를 위하여, 또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을 위하여…….
이것이 너와 나의 행복된 청춘이 아니냐?
『조선지광』 82호, 1929.1
우리 오빠와 화로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 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야 지금은 화젓가락만이 불쌍한 우리 영남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실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었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 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야 기어올라가든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백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야 제가 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었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바루르 밟는 거치른 구두 소리와 함께 - 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 그래서 저도 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의 일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 - 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 -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 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섧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을 수 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 누이 동생
한 잔 포도주를
찬란한 새 시대의 향연 가운데서
우리는 향그런 방향 우에
화염같이 붉은 한 잔 포도주를 요구한다
새벽 공격의 긴 의논이 끝난 뒤
야영은 뼛속까지 취해야 하지 않느냐
명령일하(命令一下)
승리란 싸움이 부르는 영원한 진리다 그러나 나는 또한 패배를 후회하지 않는다 승패란 자고로 싸움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피로하지 않는 것이다 적에 대한 미움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지혜 때문에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최후의 결별에 임하여 무엇 때문에 한 그릇 냉수로 흥분을 식힐 필요가 있느냐
벗들아! 결코 위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서는 아니된다
동백꽃은 희고 해당화는 붉고 애인은 그보다도 아름답고 우리는 고향의 단란과 고요한 안식을 얼마나 그리워하느냐 아 이러한 모든 속에서 떠나가는 슬픔을 나는 형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잔 냉수로 머리를 식힌 채 화려했던 희망과 꿈이 묻히는 무덤을 찾느니보단
아! 내일 아침 깨어지는 꿈을 위해설지라도 꽃과 애인과 승리와 패배와 원수까지를 한 정열로 찬미할 수 있는 우리 청춘을 위하여 벗들아! 축복의 붉은 술잔을
바다의 찬가
장하게
날뛰는 것을 위하여,
찬가를 부르자.
바다여
너의 조용한 달밤을랑,
무덤의 길에 선
노인들의 추억속으로,
고시란히 선사하고,
푸른 비석 위에
어루만지듯,
미풍을 즐기게 하자.
파도여!
유쾌하지 않는가!
하늘은 금시로,
돌멩이를 굴린
살어름판처럼
뻐개질듯하고,
장때 같은 빗줄기가
야......
두 발을 구르며,
동동걸음을 치고,
나는
번개 불에
놀라 날치는
고기 뱃바닥의
비늘을 세고,
바다야!
너의 기픈 가슴속엔 사상이 들었느냐!
억센 반항은 무슨 의미이냐!
나는 한울을 향한 너의 의미보다도
날뛰는 육체를 사랑한다
시인의 입에
마이크 대신
재갈이 물려질 때,
노래하는 열정이
침묵 가운데
최후를 의탁할 때,
바다야!
너는 몸부림치는
육체의 곡조를
반주해라.
차중-추풍령
돌아올 날을 /기약코/길을 떠난/사람이/ 하나도 없는/차간은/한숨도 곤하여//누군가/싸우듯/북방의 희망을/언쟁하던/시끄런 음성은/엊저녁 꿈이다.// 밤 차가/달리는 /먼길 위에/발자국마다/꿈은 조약돌처럼/부르러져//고향의/ 제일 높다는 산도/인젠/병풍 쪽처럼/뒤를/넘어가조.//밤은/타관에/한 창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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