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관 시인
이준관(1949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1949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로, 1974년 ≪심상≫ 신인상에 시로 당선했다.
펴낸 책으로 동시집 ≪크레파스화≫, ≪씀바귀꽃≫, ≪우리나라 아이들이 좋아서≫, ≪3학년을 위한 동시≫,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쑥쑥≫, 시집 ≪황야≫, ≪가을 떡갈나무 숲≫, ≪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 ≪부엌의 불빛≫, ≪천국의 계단≫ 등이 있다.
창주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펜문학상, 어효선아동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과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준관 시인의 시 3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불어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넘어져 본 사람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일어서게 한다
가을 떡갈나무 숲
떡갈나무 숲을 걷는다. 떡갈나무 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 집이거나, 지난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 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혼례
그 눈부신 날개짓 소리 들릴 한데
텃새만 남아
산아래 콩밭에 뿌려 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 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 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
떡갈나무 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산짐승이 혀로 핥아 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산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빰을 대 봐.
조금 따뜻해질 거야. 잎을 떨군다.
https://www.seoul.co.kr/news/plan/yousungho/2020/09/21/202009210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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