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익 시인 소개
1942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나왔다.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88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수익은 압축된 시어, 명민한 감각, 정갈한 이미지로 구도의 미학을 추구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 『우울한 샹송』(1969), 『슬픔의 핵』(1983), 『단순한 기쁨』(1986), 『푸른 추억의 빵』(1995),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2000) 등을 간행한 바 있다.
젊은 날에 대한 추억,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적 체계 속에 담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60년대 ‘의미의 파괴’를 통해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현대시 동인’이면서도 그들과 달리 근대의 불안과 모순을 ‘의미의 생산’을 통해 극복하려 하였으며, 정지용의 이미지즘으로 연결되는 시적 의장을 지니고 있다.
https://youtu.be/Ux-377OvPbg?si=-J1O07fEH2CLeWFO
이수익 시인 시 5편 소개
우울한 샹송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흔미 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천 년의 사랑
산이
깊은 호수에 잠겨 있습니다.
호수가 산을 그 가슴으로 조용히 끌어안고 있습니다.
천 년 세월 그러합니다.
이따금
선착장을 떠난 쾌속보트가 흰 물보라를 날리며
호수 위를 씽씽 달립니다.
천 년 호수의 눈동자에 한 줄기 그림자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잠시…… 그뿐입니다.
다시 산이
깊은 호수에 잠겨 있습니다.
호수는 지아비를 우러러보는 지어미처럼 산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交合의 풍경입니다.
고별
그때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그 사람
오늘도 나는 등허리에 솜을 실은
나귀의 지혜가 되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종로로 간다.
무엇일까
잃어버린 그것은,
사랑일까 기억일까
독을 뿌린 별의 죽음일까
눈앞에서 아찔
정말 잘 죽었지
그때 젊은 친구
나사렛 피와 모래를 노래하다
나는 골수를 다친 채
종로의 어느 밝은 상점 앞에서
시방 비를 맞는데
웬일일까 자꾸 웃음이 터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어머니도 아니다 누이도 아니다
그렇지 참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자네
얼굴이 타도록 술을 마시고
납덩이보다 무거운 솜을 진 채
긴 벽을 돌아선 종로에
종로에,
가려운 피부엔 돋는 부스럼
그때 잘 죽었지
정말 한이 된다.
차라리 눈부신 슬픔
신(神)은
이 아름다운 며칠을
우리에게 주셨다.
생애의 절정을
온몸으로 태우며
떨기떨기 피어 오른 하얀 목련
꽃잎들, 차라리 눈부신 슬픔으로 밀려드는
봄날!
나머지 길고 지루한 날들
열려 있어 이 황홀한 재앙의 시간도
차츰 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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