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시인 소개
1942년 4월 2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출생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가 추천되고, 1968년 〈잠 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무명 연시》,《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오세영 시인의 시 소개
아침
아침은
참새들의 휘파람소리로 온다.
천상에서 내리는 햇빛이
새날의 커튼을 올리고
지상은 은총에 눈뜨는 시간
아침은
비상의 나래를 준비하는
저 신들의 금관악기
경쾌한 참새들의 휘파람 소리로 온다.
그릇 1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강물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紹)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겨울 들녘에 서서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인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나는 누구?
도서관은 골 깊은 산이다
등산하듯 층계를 올라
어두운 서가를 뒤진다
이 골짜기는 역사 서가, 저 산봉우리는 철학서가,
저 능선은 과학 서가
고서는 이끼 낀 바위로 앉아 있고
사서는 칡넝쿨로 얽혀 있다
이곳저곳 걸으며
화두 하나 참구한다
나는 누구일까
청노루, 백사슴 다 아는 산길에서
딜을 잃고 망연히 헤매는데
앞에는 문득
깎아지른 듯 가로막고 서 있는 절벽
그 까마득한 벼랑에 핀
꽃
한 그루
낙엽
이제는 더 이상
느낌표도 물음표도 없다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
다함없는 진실의
아낌없이 바쳐 쓴 한 줄의 시가
드디어 마침표를 기다리듯
나무는 지금 까마득히 높은 존재의 벼랑에
서 있다.
라일락 그늘 아래서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루래도 보이질 않는구나
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주히 흩날리는데
무슨 말을 썼을까
날리는 꽃잎에 가려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그
한 줄
바닷가에서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밤비
밤에
홀로 듣는 빗소리
비는 깨어 있는 자에게만
비가 된다
잠든 흙 속에서
라일락이 깨어나듯
한 사내의 두 빰이 비에 적실 때
비로소 눈뜨는 영혼
외로운 등불
밝히는 밤
소리 없이 몇 천 년을 흐르는 강물
눈물은
뜨거운 가슴속에서만
사랑이 된다
슬픔
비 갠 후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먼 산을 가까이 다가서고
흐렸던 산색은 더욱 푸르다
그렇지 않으랴,
한 줄기 시원한 소낙비가
더럽혀진 대기, 그 몽롱한 시야를
저렇게 말끔히 닦아 놨으니
그러므로 알겠다
하늘은 신의 슬픈 눈동자,
왜 그는 이따금씩 울어서
그의 망막을
푸르게 닦아야 하는지를,
오늘도
눈이 흐린 나는
확실한 사랑을 얻기 위하여
이제
하나의 슬픔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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