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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 소개와 시 소개

기형도 시인 소개

 

 

1960년 3월 13일, 경기도(현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 392번지의 피난민 가정에서 3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인 1965년에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701-6호)로 이사하였다. 특히 대표 시 <안개>는 소하동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한다.


서울시흥초등학교, 서울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1979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 문학 동아리인 연세 문학회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경기도 안양시의 모 부대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4학년 때인 1984년 10월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일했다.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으나 1989년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당시 만 28세로,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입속의 검은 잎"은 데뷔 이후 첫 시집이자 유고작으로 남았다.

그는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추모공원에 묻혔다.


뇌졸중은 일종의 가족력으로, 그의 아버지가 이로 인해 쓰러진 것에 대해 자신도 그럴 것이라는 비관적인 사고를 생전에 가졌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고혈압도 있었다고.


기형도 시인의 작품


-유고작 <입 속의 검은 잎>  (1989년) - 문학과지성사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1990년) - 도서출판 살림
-<기형도 전집> (1999년) - 문학과 지성사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 (2009년) - 문학과 지성사

-30주기 시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2019년) - 문학과 지성사

-등단 전인 1982년에 신촌문학회의 여성 문우에서 써 준 미발표 연시 3개가 2017년 6월에 공개되었다.  군대시절 술값을   대신 내준 여성회원들에게 고마움에 써준 시가 보관되어 온 것이라 한다.

 

 

 

 

기형도 시인 소개와 시 소개

 

 

 

 

 


특징


그는 독특한 색채의 시를 많이 썼는데,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시가 주를 이룬다. 당시의 정치적 색채가 짙은 민중시, 노동 시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덕분이었다.

 

기형도 전집에서는 "기형도의 언어들은 유예된 죽음의 언어들이다"라고 평가한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시인으로 대표되는데 7, 80년대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 가난과 고통을 글에 녹여낸 한편 일면의 따뜻함과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들 중 <가는 비 온다>라는 시 속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지강헌일당의 사건을 연상시키는 시가 등장한다.

 

 

 

 

 

 

 

기형도 시인의 시 소개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 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 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나쁘게 말하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가을에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유령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음성을 만들어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소리에 할퀴운 자국

롤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물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혀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늙은 사람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 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다

 

 

 

 

 

 

 

 

 

 

 
입 속의 검은 잎
85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로 등단한 기형도의 유고 시집『입 속의 검은 잎』. 일상 속에 내재하는 공포의 심리구조를 추억의 형식 을 통해 표현한시 60편을 모았다. 크게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오후 4시의 희망’, ‘질투는 나의 힘’, ‘진눈깨비’, ‘여행자’,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수는 입을 다무네’, ‘홀린 사람’, ‘입속의 검은 잎’, ‘그날’, ‘바람은 그대 쪽으로’, ‘숲으로 된 성벽’ 등의 시편과 김현 해설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이 수록되어있다.
저자
기형도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1991.02.01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오늘의한국작가 5)
-
저자
기형도
출판
출판일
1999.04.10

 

 

 

 

 

 

 

 

 

 

 

안개

 

1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기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범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갯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탐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나나 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바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운 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가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입 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 편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력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다,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껍질

 

공중을 솟구친 길은

그늘을 끼고 돌아왔고

아무것 알지 못하는 그는

한 줌 가슴을 버리고

떠났다.

 

차창 안쪽에 비쳐오는

낯선 거리엔

대리석보다 차가운

내 환영이 떠오른다

아무것 알려하지 않는 그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깎았다.

 

그는 나보다 앞선 세월을 살았고

나와 동갑이었다.

 

감싸 안은 두 발이 천장을 디디고 휘청거리는데

단단히 굳어버린 포도엔 바람이 일고

이 밤은 여느 때마냥 춥다.

 

 

 

 

 

 

388번 종점

 

 

구겨진 불빛을 펴며

막차는 떠났다

 

적막으로 무성해진 가슴 한편 공지에서

캄캄하게 울고 있는 몇 점 불씨

가만히

그 스위치를 끄고 있는 한 사내의 쓸쓸한 손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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