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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혁 시인 : 정글의 시간

심승혁 시인 : 

 

 

 

심승혁 시인

 

 

 

정글의 시간

 
 
 
죽음을 뒤로 죽음이 이어지는 수풀 틈
첫울음이 가느다랗다
강한 이빨에게 뜯어먹히는 소리와
약하게 퍼지는 울음에도 아랑곳없이
미처 감지 못한 눈망울 아래
죽음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수백 개의 발걸음이 힘차다
태어난다는 것은
죽을 수 있다는 것의 시작
그토록 살기 위해 울었던 순간도 잠시
결국 무너질 끝까지 울음을 멈추고
숨죽인 채 살아낸 고단한 살점을
들리지도 않던 작은 걸음들에게
눈물로 흠뻑 적셔 떼어준다
눈은 감기고 점점, 활기 차오르는
첫울음이 커질 때쯤
마지막 피곤을 땅에 놓는데
어딘가 수레바퀴 소리, 참 시끄럽게도
돌고 있…
 
 
 
 
 
 
 

까마귀

잠자리 풀잎에 앉은 아래

개구리 혀를 쏘려 하고

백로 한 마리 부리에 힘을 주는데

뒤엉킨 생사의 갈림길에

남 좋은 건 못 봐!

까마귀 울자, 깍깍

백로 까맣게 속이 상한다

잠자리도 개구리도 모르는

까만, 백로와 까마귀의 전쟁이 자욱해서

진득해진 늪

건너던 사람들 덩달아 헐레벌떡 까매진다

 

 

 

 

 

동물의 시간

 

해가 지기 시작하면

토할 용기 없어 삼키기만 했던

그날이라는 그때들이

네 개의 초식성 위를 가진 울음으로

되새김당한다, 우욱

동물이다

짐승이기엔 아직껏 교만해서

끝내 말을 잊지 않은 질긴 동물이다

배움을 자주 잊고

실패를 자주 잊고

사람을 자주 잃어도

단 한 번의 성공만 쥐느라

찡그린 뇌 한번 웃지 않는 동물이다

육식성 이빨 감추고 뭉툭하게

개와 늑대의 시간 경계선을 넘을 때

아무도 모르는, 컹컹

벗지 못한 사람의 허물 안

알 수 없는 동물의 혀가 자꾸 말을 건넨다

 

시인의 시간

세상 것들에게서

내 모습 자꾸 보이길래

안쪽을 뒤집어

바깥쪽으로 쏟곤 했습니다

 

 
 
 
- 심승혁,  [사람의 시간], 밥북,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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