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도서관
임효빈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으나 말 한마디 못했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서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있다
-임효빈,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 (여우난골, 2022)> 중 "도서관의 도서관" -

임효빈 시인
임효빈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이 출간되었다.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우리의 삶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이 잠깐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작품에 담아 왔다.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의 죽음’으로 표현한 등단작 「도서관의 도서관」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당대 문제를 내밀한 정서 의식으로 예각화했다”고 평가했던 것처럼, 시인은 생의 온기를 잃어 가는 존재들의 미열을 읽어내고 그것을 정성스럽게 세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담론의 언어로 완성하는 재능을 가졌다.
담백하고 정갈한 작품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단어들의 비밀스러운 결을 느낄 수 있고, 고목의 긴 생애를 품고 있는 나이테처럼 각각 시편들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근원적인 서사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임효빈 시인의 작품들은 낡은 대상들을 통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순수성을 재현하는 신화학자의 기록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것은 상상 속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본래 존재했으며 다시 삶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진실한 역사의 한 조각이다.
시인은 이번에 펴내는 첫 시집에 대해 “시간여행자의 뒤척임에 대한 기록”이며 그것은 “코끼리를 (시간 속으로) 불러내는 커튼콜”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지루한 삶 너머의 신화 속에 신성한 자태로 인간들을 굽어보는 코끼리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실제로 만나는 코끼리들은 서커스 무대에서 학대받거나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무임금 노동을 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시인은 그런 코끼리를 신격화하지도 않고, 그의 상처를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녀는 “다음 생에서는 축생(丑生)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코끼리를 시라는 무대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코끼리가 스스로 말하고 춤추며 ‘인간’으로 ‘환생’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축생으로 전락한 우리 주변의 삶들, 그리고 시인 자신의 삶의 국면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인간처럼 독자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게서 잃어버린 말들을 발견하는 일은 오래된 신화 속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하나의 단어를 길어올리는 시간여행자의 뒤척임과 같다. 그래서 시인은 “숱하게 반복해도 달리 바꾸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결말”을 직감하면서도 코끼리의 공연을 지켜보기 위해 시간여행 혹은 꿈꾸기로서의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시인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이 잃어버렸던 생의 가장 빛나는 몸짓을 코끼리의 춤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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