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화 상 (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나 /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 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디트리히 본 훼퍼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내가 마치 영주가 자기 성을 나오듯
조용하고 활기차고 견고한 모습으로 감방에서 걸어나온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내가 마치 내 사람에게 명령이라도 하듯
자유롭고 친절하며 명확한 말로
간수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내가 마치 승리에 익숙한 사람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웃으며 당당하게
고난의 시간들을 견뎌낸다고 말한다
나는 진정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인가.
아님 단지 내가 아는 나 스스로에 불과한가.
마치 손아귀에서 내 목이 압박당하여 숨조차 쉬기 힘든
새장 속의 새처럼 불안해하며 갈급해하고 병약한 존재인가.
색들과 꽃들, 그리고 새소리에조차 목말라 하고
친절하고 상냥한 몇 마디의 말들을 그리워하며,
대사건들을 기대하고
만날 수 없는 동료들의 안부에 기력을 잃기도 하며
기도하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하는 중에도 걱정과 공허감에
쓰러지며 이제 모든 것과 작별할 준비가 되어 가는 그런 존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혹은 저것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었다가 내일은 다른 존재로 변하는가.
아니면 양쪽 모두 내 모습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혼자 있을 땐 고통에 짓눌리는 연약한 존재인가.
이미 얻은 승리 앞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패잔병같은 무언가가 여전히 내 속에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비롯된 이 고독한 질문들이 나를 비웃는다.
* 디트리히 본 훼퍼
나치에 항거했던 독일의 목사이면서 행동주의 신학자 옥중 시
히틀러 암살을 기도하다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1945년 4월 미군 진출 작전 플뢰센베르크의 수용소에서 처형되었음. 1951년 출판된 《옥중서간》중에서
나는 나비
노래 윤도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살이 터져 허물 벗어
한 번 두 번 다시
나는 상처 많은 번데기
추운 겨울이 다가와
힘겨울지도 몰라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거미줄을 피해 날아 꽃을 찾아 날아
사마귀를 피해 날아 꽃을 찾아 날아
꽃들의 사랑을 전하는 나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Spread my wings and fly away Ride the wind sailing on the world today
Sing a song reach for the sky
Flying butterfly God save me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노래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 얘기를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젠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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