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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노인 안개 노인 문정희 안개 벗어나니 또 안개 이윽고 아름다움도 위험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영원한 잠이 바짝 쫓는 것 말고는 급할 것이 없다. 걸어온 길에 대해 할 말은 좀 있지만 노동력 없는 무산자 계급으로 그만 입 다물기로 했다 무릎과 치아의 통증에다 핏빛 네온 휘황한 자본주의를 칙칙하게 만든 죄로 그늘에서 어슬렁거린다 그래도 정체불명의 이름 어른신이라 어르며 지하철과 고궁이 두루 공짜 아닌가 장수 시대 알토란 같은 의료보험을 잘라먹는다고 한쪽에선 폐기물 보듯 하지만 파고다공원을 차지한 이도 있다 한다 까짓것 오늘 점심에는 식판을 들고 굽은 어깨로 절이나 교회의 무료 급식대 앞에 줄이나 서 볼까 공동묘지 비슷한 색깔의 검버섯 핀 얼굴로 얻어먹는 한 끼의 선심은 얼마나 새로운 맛일까 언제부터 나이가 곧 늙음이..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인물소개 1942년 1월 21일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대학 3학년 재학중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시의 숲을 거닐다', '직소포에 들다'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 부문) 등을 수상했다.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수상 1996 소월..
눈 위에 쓰는 겨울시 눈 위에 쓰는 겨울시 홍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https://youtube.com/shorts/-BLDyEEwXRU?si=YQO521x6lLeKvp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