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3)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희덕 :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나희덕 '쓰다'라는 동사의 맛이 항상 쓴 것은 아닙니다'보다'라는 동사는 때로 조사나 부사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라는 부사를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빨리'라는 부사도 조심하세요'항상'이라는 부사야말로 항상 주의해야 할 물건이지요하느님이 부사를 좋아하시는 건 사실이지만요 양치기가 사제보다 더 숭고할 수 있는 건바로 부사 때문이에요양치기가 어떻게 양들을 불러 모았는지그때 눈빛은 어땠는지목소리는 얼마나 다정했는지해 질 무렵 어둠은 얼마나 천천히 걸어왔는지양들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돌아왔는지돌아오는 길에 데이지가 얼마나 많이 피어있었는지부사로 이루어진 그런 순간들 말이에요 부사는 희미한 그림자 같아서부사 곁에서는 마음도 발소리를 낮춘답니다 '천천히'라는 부사는 얼마나 천천히 어.. 나희덕 시 귀뚜라미 귀뚜라미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정호승 시 : 새벽 눈길 새벽 눈길정호승 눈길을 걸을 때에는 눈을 밟지 않아야 한다 특히 첫눈 내린 길을 걸을 때에는 첫눈을 밟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걸을 때에는 혼자 걷지 않도록 조심ㅡ해야 한다 공연히 눈길에 심장을 버리고 저 혼자 서럽게 울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걸을 때에는 다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눈길에 더러운 내 발자국은 남기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걸을 때에는 코트 깃을 세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바라보면서 바람에 툭툭 눈 뭉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흰 눈을 떨치고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정호승, 눈길 걷는 법-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6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