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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 소개와 시 10편 소개

김혜순 시인 소개와 시 10편 소개

 

김혜순(金惠順, 1955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1979년 시단에 등단했다. 1988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에 임용되었다.

 

2019년 6월 6일(현지시간) 시집 《죽음의 자서전》(영문제목 ‘Autobiography of Death’)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캐나다 최고 권위의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했다.

 

 

 

 

김혜순 시인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하면서 비평가로 먼저 등단했고, 시인으로는 1979년 문학과 지성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권유로 비평보다는 시 창작에 집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시론에 대해서는 꾸준히 써왔는데, 특히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여성 시인 중에서는 같은 해 데뷔한 최승자와 함께 인지도가 높고 존경받는 시인이다. 특히 미래파 여성 시인들은 김혜순 영향력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김행숙이 있다.


극작가 이강백과 결혼했다. 남편 또한 한때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 또 다른 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1)
  •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문학과지성사, 1985)
  • 어느 별의 지옥 (청하, 1988)(문학동네, 1997)(문학과지성사, 2017)
  • 우리들의 陰畵 (문학과지성사, 1990)
  •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지성사, 1997)
  •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문학과지성사, 2000)
  •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 당신의 첫 (문학과지성사, 2008)
  • 슬픔치약 거울크림 (문학과지성사, 2011)
  • 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사, 2016)
  • 죽음의 자서전 (문학실험실, 2016)
  • 날개 환상통 (문학과지성사, 2019)
  •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문학과지성사, 2022)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문학과지성사, 2025)
  •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난다, 2025)

 

 

https://www.seattlek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79

 

김혜순 시인의 작품 세계① : 언어의 혁명, 여성성의 재발견 - 시애틀코리안데일리

한국 현대시단에서 김혜순 시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의 시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우리 사회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절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꽃을 피워낸다. 최근 국제 문학

www.seattlekdaily.com

 

 

 

 

 

 

 

김혜순 시인의 시 10편

 

날마다 맑은 유리처럼 떠올라 

넌 모를 거야 밤마다 내가
잠든 나를 살그머니 눕혀놓고
네게로 간다는 걸
 
이건 더욱 모를 거야
밤마다 네가
잠든 너를 벗어나
나를 맞으러 나온다는 걸
 
우리 둘이서 즐거이 손잡고
요단강을 넘나들며
벗은 몸에 수천의 꽃잎을 달고
아름다운 불꽃을 입으로 내뿜으면서
발목에 지구를 매달고 날아다닌다는 걸
정말 모를 거야
 
깊은 밤 우리 둘이서
맑은 유리처럼 떠올라
하늘을 마시고 달을 삼키며
그림자도 없이
사랑하고 포옹한다는 걸
넌 모를 거야
 
그리고 넌 이것도 모를 거야
밤이 가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헤어져
다시 잠든 몸 속으로 들어가
소리도 없이
드러눕는다는 걸
드러누워 불을 끄고
땅속 깊이 우리의 꽃대궁을 묻어둔다는 걸
그리고 잠 속 깊이
우리의 영혼을 감춘다는 걸
넌 더욱 모를 거야
 
어느 별의 지옥 / 문학과지성사, 2017

 

 

 

 

 

 

 

별을 굽다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 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 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 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속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당신의 첫' / 2008년 문학과 지성사

 

 

 

풍경의 눈빛 / 김혜순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줄 알았는데

풍경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질겁했습니다

내가 성의 계단을 오를 때

내 시선의 높이가 변하면서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줄곧 풍경이 눈빛을 바꿔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뺨을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나에게 성을 안내해 주겠다고 내 팔목을 잡아끌며

계단을 오르던 소녀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낮잠 자다 깨어나니 수억만 남자들이

둘러싸고 한꺼번에 내려다보는 듯

우리는 갑자기 통해서 자지러지게 소리쳤습니다

 

소녀는 놋쇠 거푸집 하나에 꼭 들어맞을 만한 작은 종처럼

세차게 울다가 소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곤 여섯 방향에서 달겨드는 풍경의 화살에 갇혀

더러운 손톱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안내해주었으니 돈을 달라고 조르던 것도 잊은 채

유충처럼 제 고치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지옥이

성의 발코니 아래로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모두 거짓말이야 하고 바람이

광대하고 광대한 거짓말인 풍경 속을 날아갔습니다

새들이 내 뺨을 후려치듯 떨어지며 낮은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계단마다 바뀌는 풍경의 눈빛이

위아래 사방에서 떨어지는 휘몰아치는 본드처럼

내 전신을 휘감았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몃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 올 때 거기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 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 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은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 긋 다. 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당신의 눈물 

 

당신이 나를 스쳐보던 그 시선

그 시선이 멈추었던 그 순간

거기 나 영원히 있고 싶어

물끄러미

꾸러미

당신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것인

물 한 꾸러미

그 속에서 헤엄치고 싶어

잠들면 내 가슴을 헤적이던

물의 나라

그곳으로 잠겨서 가고 싶어

당신 시선의 줄에 매달려 가는

조그만 어항이고 싶어

 

 

 

눈이 내린 날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강물에 붙들린 배들을 구경하러 나갔다.

훈련받나 봐, 아니야 발등까지 딱딱하게 얼었대.

우리는 강물 위에 서서 일렬로 늘어선 배들을

비웃느라 시시덕거렸다.

 

한강물 흐르지 못해 눈이 덮은 날

강물 위로 빙그르르, 빙그르르.

웃음을 참지 못해 나뒹굴며, 우리는

보았다. 얼어붙은 하늘 사이로 붙박힌 말들을.

언 강물과 언 하늘이 맞붙은 사이로

저어가지 못하는 배들이 나란히

날아가지 못하는 말들이 나란히

숨죽이고 있는 것을 비웃으며, 우리는

빙그르르. 올 겨울 몹시 춥고 얼음이 꽝꽝꽝 얼고.

 

 

지평선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 낮과 검은 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엄마

 

나는 엄마다

딸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내가 또 새끼를 근엄하게 훈계하고

먹여서 기르니

나는 엄마다

엄마이기 때문에

나는 엄마 행세를 한다

그건 안 돼!

하지 마!

때릴 거야!

 

그전엔 난 엄마가 아니었다

어렴풋한 기억 저편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두 눈이 전우주를 향해 열려 있고

손가락들이 명왕성 해왕성을 꼬집고 놀 때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나의 엄마도 나에게 엄마 행세를 했다

별 떨어질라 푸르른 창공 아래엔

지붕을 덮고

바람 불라 넓은 벌판 한가운데

벽을 세우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시야를 좁게 가져라

저 까만 우물을 향해 투신해라

영혼을 아무 데나 흘리고 다녀선 안 된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자식의 시야에 칸을 지르고

널 푸른 영혼에 금을 긋고

우물을 파는

자못 교훈적인 엄마가 되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직육면체 물, 동그란 물, 길고 긴 물, 구불구불한 물, 봄날 아침 목련꽃 한 송이로 솟아오르는 물, 내 몸뚱이 모습 그대로 걸어가는 물, 저 직립하고 걸어 다니는 물, , …… 내 아기, 아장거리며 걸어오던 물, 이 지상 살다 갔던800억 사람 몸속을 모두 기억하는, 오래고 오랜 물, 빗물, 지구 한 방울.

오늘 아침 내 눈썹 위에 똑, 떨어지네.

자꾸만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으로 가고 싶은

그런 운명을 타고난 저 물이

초침 같은 한 방울 물이

내 뺨을 타고 어딘가로 또 흘러가네.

 

 

 

잘 익은 사과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 나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 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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