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거주하며 ‘시와 편견’ 재등단과 2019년 ‘후박나무 연애도감’ 시집을 출간했으며, 2020년 문인 ‘유안진’ 추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영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볼 것 같은』이 출간되었다.
〈오늘의 시조시인상〉과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김영란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상조 평론가에 따르면 “김영란의 시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시가 다루는 대상이 우리에게 결코 낯설어서는 안 되는 낯선 존재라는 데 있다. 그 ‘낯선 존재’를 차례로 호명하는 연민의 방식으로, 역설적이게도 김영란의 시는 21세기에도 끝나지 않은 야만을 백일하에 드러낸다. 이 야만은 우리와 결코 멀지 않다.”
그렇기에 시인은 시 쓰기를 멈추지 않고, 독자들은 시를 읽으며 이 이 야만에서 비켜나 “한 시대 행간을” 함께 채우려는 것이 아닐까.
시대와 역사가 무참히 짓밟고 소외시킨 이들. 해설을 쓴 신상조 평론가의 말처럼, “폭력적 국가 체제의 희생자들을 차례차례로 호명하는 그의 시는, 진실을 지향하고 용서와 수용을 지양한다.” 시인은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이 까맣게 잊힐 만큼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일”을 “열한 살 내 품에 안겨/벌겋게/꽃이” 지던 한 살 여동생으로 되살려낸다. 무참한 서정으로 비극적 삶을 끌어안는 시인은 함부로 희생자들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으며, 그 어떤 폭력도 용서하지 않는다.
2020 문인 ‘유안진’ 추천 최우수 작품상 수상 경력 ‘시와 편견’ 재등단
2019 ‘후박나무 연애도감’ 시집 출간
김영란 시인, ‘몸 파는 여자’ 시집 펴내 - 뉴스라인제주 (newslinejeju.com)
시조 10편 소개
슬픈 자화상
나혜석을 다시 읽으며
꽃이 피었다 한들 그대 위해 핀 건 아냐 금지된 소망 앞에 슬픈 꽃말 피어난다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그런 말 하지 마 수없이 피고 지는 삶이 곧 사람인 걸 덧칠해도 더 불안한 세월은 마냥 붉고 한 시대 행간을 건너는 여자가 거기 있네 ―
멸고국수*
너 아니면 안 되겠다
한 적이 있었던가
무난한 행복보다 아슬한 긴장 속에
반대편 풍경에 반해
떠나가질 못 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
서로를 놓기까지
남들은 특별한 사랑
그런 건 줄 알았다
통 멸치 진국에 얹힌
돼지고기 석 점 같은
멸치국수
고기국수
서로 다른 주문처럼
평행 그 지점
외롭고 먼 그대 어깨
살포시 기대어 보네
저기 저 연인처럼
--
* 멸치고기국수의 줄임말
해녀콩꽃
낙태한 아이를 버린 분홍빛 고쟁이같이 소로도 못나면 여자로 나는 거라고 하늘에 해 박은 날 이면칠성판등에 지고 제생을 자맥질하듯 저승까지 넘나 들던, 어미 팔자 대물림 딸에게 이어질까 몸 풀고 사흘만 에 속죄하듯 물질 가던,
어머니 애간장 녹아 전설처럼 피어난 꽃
https://youtu.be/coKUBBbrBhs?si=huiG-Xp4byPPOaAO
유도화
젖 곯아 밥 곯아 꽃들이 진다
팔월 염천에 눈뜨고 진다
“함부로 손대지 마라” 허옇게 품은 독(毒),
내리 사흘 배고파한 살 여동생 울었다
영문도 모르는 폭도 새끼
젖 한 모금 못 얻어 열한 살 내 품에 안겨 벌겋게 꽃이 진다
여자가 여자에게
서둘러 떠나며
작은마누라만 데려갔다고
이승에도
저승에도
당신 자린 없다던
할머니
넋두리 같은
담쟁이가
담쟁이가
먼 기억 문 열고 기웃대는 그 옛집
흙마당 처마 밑 잠시 머문 바람처럼
누군가 나를 열고서 들여다볼 것 같은
청상의 젖은 눈시울 닦아줄 이 없이
얽은 속 숨기려 구석지로 돌아앉아
"다음엔 남자로 나라!"
후대에게
남긴 말
산전(山田) 가는 길
어수선한 세상에선 길도 길을 잃는지
해마다 오던 길 서너 시간 헤맸다
우거진 조릿대 숲만 딴청 부리는 십일월,
드문드문 노란 칠암호 풀 듯 찾아가는
시안모루 그 지점 노출을 꺼리는지
초록의 표고밭 경계 그물망만 드높다
목숨 건 명분들이 하나둘 하산할 때
이십 대 젊은 사령관 푸른 꿈도 흔들렸을
살아서 불안한 시간 섬칫 붉은 단풍이여
앓아누운 어둠 속을 맨발로 걷던 사람
천미천 마른 혓바닥 그날처럼 타들어
무더기 돌탑에 쌓인 꿈이 외려 슬프다
*산전 : 사려니숲 시안모루에 있는 곳으로 4.3 항쟁 때 이덕구 부대가 머물렀던 곳으로 전하여짐
https://www.nocutnews.co.kr/news/5141560
*제주도 4.3항쟁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목호의 난과 함께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이며,
여순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억울하게 학살되거나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해녀의 눈
해녀의 물안경을
눈이라고 합니다
통눈은 왕눈이, 두 눈짜리 족쇄눈, 쑥 한 줌 비벼 닦으면 바닷길이 환해지죠 물 한 모금 허락 않는 열 길 물속에서 칠성판 등에 지고 목숨값 얻으러 갈 때마다 눈멀어 귀멀어 세상에서 멀어져도
눈 쓰고 퍼렇게 눈 뜨고
눈을 건저 올리죠
쓸쓸한 안부
밤하늘 거위눈별* 물기가 묻어 있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만 많아져 꽃 필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어야지 순간이 영원보다 아름다운 거라는 바람의 속삭임에 끄덕이며 끄덕이며
지나는 별들에게서 그대 안부 듣는다
---
* 거위눈별 : 촉촉한 모습으로 관측되면 다음날 비가 온다는 별.
애월의 달
-故 정군칠 시인께
달빛 길 오래 걸어 고내 포구 가던 날
키 낮추며 안겨드는 그해의 가을은 앙상한 뼈만 남기고 수평선을 넘더라 밤새 떨던 억새 무리 만장처럼 흔들리고 조그만 무인카페 인증 샷에 남긴 웃음 제 안의 화를 태워서* 홀로 길을 가더라
바닷가 벼랑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르고
별난 어미
세상천지 뒤져 봐라 이런 어미 어디 있나
지 잘 나서 그런 줄 알지 정신 차려 이것들아 주변머리 모자라도 맺고 끊게 가르쳤잖여 말 머리 잘라먹지 않고 네 뜻 고이 전하려면 어미 없인 안 된다 해볼 테면 어디 해 봐 세치 혀 나불거려도 동사 꼬리에 꼬리 물고 그 꼬리 다시 물고 의문 명령 감탄 청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어말어미 선 어말어미 종결어미 접속어미 이 어미 저 어미 정신도 사납다만
어쨌든 어미 잘 모셔 효자 한 번 되어 봐
밀라이*
담배 좀 다오
담배 좀 다오
피 냄새!
살 수가 없어
한 모금 담배 연기에 쿨럭거리면서도 할머니는 계속 담배를 찾으신다 우리는 둥그렇게 둘러서서 담배를 붙였다 볼우물 깊게 패이도록 빨아들여 할머니에게 연기를 불어드렸다
이제야 살 것 같구나
비린내
묻히는구나
---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집단학살을 자행했던 베트남의 시골 마을 이름.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3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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