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 소개
박노해(朴勞解, 본명: 박기평(朴基平), 1957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 노동운동가, 사진작가이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보성군 벌교읍 농가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독립운동과 진보 운동에 참여했으며, 판소리 가수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16세에 서울특별시로 올라가 낮에는 일을 하고 선린상고에서 야간 수업을 들었다. 건설, 섬유, 화학, 금속, 물류 분야에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당시 금서였지만 100만 부를 발간하였다.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독서와 집필을 이어갔다. 복역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 후 20여 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 왔다.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 시집”이 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인 2022년 5월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가 출간됐다.
2024년 2월 생애 첫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이 출간됐다.
박노해 시인 시 10편 소개
길 잃은 날의 지혜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 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행복은 비교를 모른다
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 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 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 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 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 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 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 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 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 나의 행복은 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나의 불행은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우리들, 한 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새근새근 숨 쉬는 상처를 품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 보지만
우리는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오늘 젖은 얼굴로 걸어갈 뿐이다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3단
물건을 살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 것 단단한 것 단아한 것
일을 할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사람을 볼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굽이 돌아가는 길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진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바람 잘 날 없어라
바람 잘 날 없어라
내 생의 길에
온 둥치가 흔들리고
뿌리마다 사무치고
아 언제나 그치나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싸워야 하나
바람 잘 날 없어라
울지 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픔 속에 외로움 속에
푸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 행복이라는 사실이
행복은 크고 좋은 집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차림의 만찬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귀히 여기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소박한 저녁 밥상의 웃음 속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결국 행복이라는 사실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뿐인 길이 아니고
행복하다고 애써 느끼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고
행복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이의 행복을 생각할 때 온다는 것이
돈과 권력과 미모를 가진 자들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보다 더 적은 것으로도 더 많이 즐겁고
선함과 정의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라는 사실이
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행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길에서
함께 울고 웃고 분투하는 사람들 가운데
흔들리며 피어나는 들꽃이며 바람이며 미소인 것이
https://youtu.be/HDLsgDeVgpo?si=Ve2B7uKnrOFZps_7
길이 끝나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봄이 걸어 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https://youtu.be/u5LBmgMH1YQ?si=VxKyTmsJIEeEvaxo
그 겨울의 시
문풍지 우는 겨울밤에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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