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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의 생애와 시 소개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같은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적을 둔 이헌구(李軒求)와 친교를 맺었으며, 이어 정인섭(鄭寅燮)과 알게 되어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하였다.

 

1932년 대학졸업 후 귀국하여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194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일본인과 조선인은 모두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에 차별이 있었고, 일본인이 조선에 도항하는 것은 자유롭지만 조선인은 허가 없이는 일본에 도항할 수 없다. 이러한 차별대우는 조선인에게 자유를 주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조선인을 용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몰래 조선의 독립을 기도해야한다"

 

"중동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의 폐지는 조선어의 근절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조선민족이 존속하는 한 조선어는 절멸해서는 안된다"

 

 

김광섭 시인 소개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自由文學)』지를 발행했다.

 

그가 문학에 뜻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 이헌구와 교분을 맺으면서부터인데,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의 우리 나라 학생 동창회지인 『R』에 시 「모기장」을 발표했다.

 

1933년 『삼천리(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現代英吉利詩壇)」을 번역, 발표했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동아일보』(1933.10.2.)에 발표했다.

 

이어서 1934년 『문학(文學)』에 「수필문학고(隨筆文學考)」, 『조선문학(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朝鮮的關心)」을 발표하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詩苑)』에 「고독(孤獨)」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읊은 것이었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憧憬)」·「초추(初秋)」 등이 있는데,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이 배경이 된 것들이었다.

 

1937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 연극운동에 가담하면서 서항석(徐恒錫)·함대훈(咸大勳)·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 등과 교유했다.

 

1938년 제1시집 『동경(憧憬)』을 간행했다. 광복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해 창작과 단체활동을 병행했다. 이 무렵의 시로는 「속박과 해방」·「민족의 제전」 등이 있는데, 광복의 환희와 민족의식을 표현한 것이었다.

 

한편, 계도적인 민족주의 문학론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경향신문』에 「정치의식과 문학의 기본이념」(1946), 『민주일보』에 「문학의 당면 임무」(1946), 『만세보(萬歲報)』에 「민족문학의 방향」(1947), 『백민(白民)』에 「민족문학을 위하여」(1948)·「민족주의 정신과 문학인의 건국운동」(1949) 등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론(時論)들은 그의 시정신과 동일한 맥락을 이루는 것이었다. 1949년에 간행된 제2시집 『마음』과 1957년에 간행된 제3시집 『해바라기』의 시는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었다.

 

작품 「마음」은 맑은 물과 백조의 조응을 통하여 한 생명의 실상을 읊은 것이고, 「해바라기」는 높은 이념을 해로써 상징하고 민족의 지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후기의 작품들은 1966년에 간행된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년 간행된 『반응(反應)』에 수록되었는데 전자에서는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1960년대의 시대적 비리도 비판하였고,

 

후자는 사회성을 띤 시들로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의 시편들은 관념이 예술적으로 세련, 승화되어 관조와 각성의 원숙경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지조를 고수한 시인이며, 초기의 작품은 관념적이고 지적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성과 문명의 괴리현상을 서정적으로 심화시킨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 저서로는 『김광섭시전집』(1974)과 번역시 『서정시집』(1958) 등이 있다.

 

 

 

 

 

 

 

 

 

 

시 소개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들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생의 감각


여명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지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기어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https://youtu.be/pxWa1djr3yQ?si=01C8qRs98z1ja0lL

 

 

 

 

 

해바라기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白日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奔放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圓光에 묻히듯 향기에 익어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경이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고혼(孤魂)

 


콧구멍을 막고
병풍 뒤에
하얀 석고처럼 누웠다

 

외롭다 울던 소리

다 버리고
기슭을 여이는
배를 탔음인가


때의 집에 살다가

`구정물'을 토하고 먼저 가는 사람아

 

길손들이 모여
고인 눈물을
마음에 담아
찬 가슴을 덥히라

 

아 그대 창에 해가 떴다

새벽에 감은 눈이니

다시 한 번 보고 가렴

 

누군지 몰라도 자연아

고이 받아 섬기고

신의 밝음을 얻어

영생을 보게 하라 

 

 

 

 

 

 

 

 

 

 

고향


타향 삼십 년
실향 이십 년


오십 년의 밀회와 구름다리

하늘 높이에 그 저편

땅 깊이 꺼지는 곳

 

봄바람이
꽃 핀 언덕을
들고 갔다가
그냥 돌아서니
참새들이 어리둥절해서

헷갈려 숲 속에 숨어 버렸다

 

동산대(東山臺)를 지키는 늙은 돌배나무는

성황당에나 선 듯 의젓하게

싱싱한 바다 냄새를 풍기며

 

늦다고 욕지거리하는

애들의 콧등에서

땀방울을 식혀 준다

 

바다에는 낯선 바위들이 서서

고기 새끼처럼 옆에 붙어 헴치던

나를 보고 놀라서

육지에 기어오르다가

지친 거북이처럼 육중하게 둥둥 떠 있다

 

이런 고향이야 가슴과 손바닥인데

빼앗아서 무엇에다 쓰나

차라리 푸줏간에서

쇠고기나 한두 근 훔쳐다

불고기나 맛있게 해 먹을 일이지

 

 

 

 

 

 

 

 

 

 

 

겨울날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인가(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 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 건너는 이사꾼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 앉으니

어머님 한 분만 오시잖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 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 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 마디 못하고 갈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는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 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 하늘에 푸른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 치 한 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대지(大地)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 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내리고

구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 나온다

어느 날 목 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 번 못하고

친구들의 손 한 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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