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시 10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황동규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https://youtu.be/eCeuIuoS5pA?si=aOQ1b269H5zbHpQR
시월 - 피천득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시월
목필균
파랗게 날 선 하늘에
삶아 빨은 이부자리 홑청
하얗게 펼쳐 널면
허물 많은 내 어깨
밤마다 덮어주던 온기가
눈부시다
다 비워진 저 넓은 가슴에
얼룩진 마음도
거울처럼 닦아보는
시월
시월의 편지 -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10월의 기도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집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 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더욱 넓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게 하시고
조금 넉넉한 인심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 주소서
시월의 시
류시화
그리고는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아, 그렇게도 빨리
기억하는가
시월의 짧은 눈짓을
서리들이 점령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태양의
영토가 아니다
곤충들은 딱딱한 집을 짓고
흙 가까이
나는 몸을 굽힌다
내 혼은 더욱 가벼워져서
몸을 거의 누르지도 않게 되리라
10월
이문재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을 따 간다
노랗게 물든 채 걸음을 멈춘 바람아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편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10월
10월 잎새
오보영 (未松)
낙엽 되어
떨어진다고
너무 서글퍼하지 말거라
그간 너는
널 맺게 해 준 나무를 위해서
나무 있게 해준 숲을 위해서
네가 너로서
지켜야 할 본분
하여야 할 도리를
할 만큼 하며 살아왔단다
지난 세월
강풍아 불어와도
폭우가 쏟아져 내려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할 바를 다하였으니
이제는 편안한 맘으로
귀한 소명 감당하거라
널 필요로 하는
땅에게로 가서
기름진 밑거름이 되어 주거라
시월
황동규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며칠 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갯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끓임 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시월에
문 태 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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