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황진이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견우가 떠나간 뒤
수심 겨워 저 하늘에 던져버린 것
동짓날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님 오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어저 내 일이야
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하노라
황진이 소개
황진이는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조선 전기의 기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중종 대의 인물로 직접적인 기록은 없고 여러 일화를 통해서 삶의 흔적을 남겼다.
당대의 석학 서경덕을 흠모하여 거문고와 술, 안주를 가지고 자주 방문하여 시와 글씨를 연마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일화도 있다. 주로 연회석이나 풍류장에서 지어진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인멸되고 시조 작품 6수가 전해지고 있다.
박연폭포, 서경덕, 황진이를 <송도삼절>이라 부를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의 전기에 대하여 상고할 수 있는 직접 사료는 없다. 따라서 간접 사료인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계통의 자료는 비교적 많은 반면에 각양각색으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신비화시킨 흔적이 많아서 그 허실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
황진이의 출생에 관하여는 황진사(黃進士)의 서녀(庶女) 주 1로 태어났다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었다고도 전하는데, 황진사의 서녀로 다룬 기록이 숫자적으로는 우세하지만 기생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맹인의 딸로 태어났다는 설이 오히려 유력시되고 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동기는 15세경에 이웃 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계(妓界)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을 갖추어 그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하고 있다. 또한, 미모와 가창뿐만 아니라 서사(書史)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였다. 당대의 석학을 사숙(私淑)하여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하여 당시(唐詩)를 정공(精工)하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자존심도 강하여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 임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기도 하였다.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에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박연폭포(朴淵瀑布) · 서경덕 · 황진이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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