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 소개
1962년 충청북도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4년 간 근무했다. 이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2학년 때인 1988년에 〈성선설〉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6년에 우연히 놀러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 인근 폐가를 빌려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에 정착하게 된다. 강화도에 정착한 후 시집 《말랑말랑한 힘》과 에세이집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발표했으며, 김수영 문학상, 윤동주상 등의 상을 받았다.
1998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5년 제2회 애지 문학상
2005년 제7회 박용래 문학상
2005년 제24회 김수영 문학상
2009년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선정
2011년 제비꽃 서민시인상
2011년 제6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시 세계
1990년 펴낸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과 1993년에 낸 《자본주의의 약속》에서 함민복은 의사소통이 막힌 현실, 물질과 욕망에 떠밀리는 개인의 소외 문제를 다룬 데 이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년)에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다. 이 경향은 《말랑말랑한 힘》(2005년)과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년)까지 이어진다.
시집
《우울氏의 一日》, 1990
《자본주의의 약속》, 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1996
《말랑말랑한 힘》, 2005
《꽃봇대》, 2011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2013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 2013. 시선집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 2009 에세이집
《눈물은 왜 짠가》, 2003 《미안한 마음》, 2006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2009 시 해설집
《절하고 싶다》, 2011
함민복 시인 시 소개
긍정적인 밥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눈물은 왜 짠가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 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금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빨래집게
옷을 집고 있지 않을 때
내 몸을 매달아 본다
몸뚱이가 되어 허공을 입고
허공을 걷던 옷가지들
떨어지던 물방울의 시간
입아귀 근력이 떨어진
입 다무는 일이 일생인
나를 물고 있는 허공
물 수 없는
시간을 깨물다
철사 근육이 삭아 끊어지면
툭, 그 한마디 내지르고
훑어지고 말
온몸이 입인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샐러리맨 예찬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여 선반에 뛰어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 쥐독 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만찬(晩餐)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집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라면을 먹는 아침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 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공터의 마음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들어
아직은 만선 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 다오
그림자
함민복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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