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 소개
1952년 6월 4일, 경상북도 상주군 상주읍 오대리(현 상주시 오대동)에서 아버지 이한구(李漢求)와 어머니 송정남(宋丁男) 사이의 5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여 1978년 졸업하였다. 1982년에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199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대구광역시 소재 계명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9년 문예창작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명예교수.
1977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시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2년 제2회 김수영문학상, 1990년 제4회 소월시문학상, 2004년 제12회 대산문학상, 2007년 제53회 현대문학상, 2014년 제11회 이육사시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에는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는데, 이것이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80년대에 나온 시집 중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방향을 결정지은 시집으로 꼽힌다. 다만 과작 성향이 짙어서 시집 숫자는 많지 않다.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이후 10년 단위로 시집을 내는 중.
그렇지만 최근에 들어서면서 시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작인 래여애반다라 에서는 지나친 에고이즘과 자기를 전시하는 모습으로 시적 매력이 많이 반감되었다. 사실 시를 오랫동안 명징하고 반듯하게 쓰기란, 시 쓰는 사람으로 쉽지는 않지만, 예전만 못한 모습으로 여전히 시를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2016년 4월 24일에 모 아이돌의 입을 통해 이분의 작품이 언급되었다. 이날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뇌섹시대 문제적 남자에 출연한 블락비의 리더 지코는 최근 자신이 읽은 책으로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책을 언급했다. 방송에서 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으나, 사실 이 책의 정체는 바로 이성복 시인이 2011년에 낸 격언집이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 문학과지성사) - 1992 개정판 * 제2회 김수영문학상
남해 금산 (1986, 문학과지성사)
그 여름의 끝 (1990, 문학과 지성사 * 제4회 소월시문학상 작품 수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993, 문학과 지성사)
(시선집) 정든 유곽에서 (1996, 문학과 지성사)
아, 입이 없는 것들 (2003, 문학과 지성사) * 제12회 대산문학상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2003, 열림원) - 2012 개정판(문학과 지성사)
래여애반다라 (2013, 문학과 지성사) * 제11회 이육사시문학상, 제53회 현대문학상 작품 수록
어둠 속의 시 1976-1985 (2014, 열화당)
산문
이성복 문학앨범 - 사랑으로 가는 먼 길 (1994, 웅진지식하우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2001, 문학동네) - 2015 개정판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2001, 문학동네) - 2014 개정판
오름 오르다 - 사진에세이 (2004, 현대문학)
타오르는 물 - 사진에세이 (2009, 현대문학)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2014, 열화당)
고백의 형식들 (2014, 열화당)
끝나지 않는 대화 -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2014, 열화당)
시론, 문학론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2004, 문학과지성사)
무한화서 - 2002~2015 (2015, 문학과지성사)
불화하는 말들 - 2006~2007 (2015, 문학과지성사)
극지의 시 - 2014~2015 (2015, 문학과지성사)
이성복 시인 시 소개
그날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 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김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편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남해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갔다
소년들의 성기(性器)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 잔 얻어먹거나
이차 대전 때 남양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무기력과 불감증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전 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수식했을 뿐 아무것도 추억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
춘화(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왔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윤리와 사이비 학설과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자진해 갔다
서시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서해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목 좁은 꽃병에
간신히 끼여 들어온 꽃대궁이
바닥의 퀘퀘한 냄새 속에 시들어가고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있다
차라리 댓잎이라면
형은 바다에
눈 오는 거 본 적 있수?
그거 차마 못 봐요, 미쳐요
저리 넓은 바다에
빗방울 하나 앉을 데 없다니
차라리 댓잎이라면 떠돌기라도 하지
형, 백 년 뒤 미친 척하고
한번 와볼까요,
백 년 전 형은 또 어디 있었수?
백 년 전 바다에
백 년 뒤 비가 오고 있었다, 젖은
그의 눈에 내리다 마는 나는 빗줄기였다
강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기다림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 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봅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어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드릴 말씀 전해 줄 친구도 없으니
오다가다 당신은 나를 잊으셨겠지요
당신을 보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오셔요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셔요
나는 팔도 다리도 없으니 당신을 잡을 수 없고
잡을 힘도 마음도 내겐 없답니다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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