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름 시 10편 소개

여름에 관한 시 소개합니다

 

 

 

여름 시

 

 

 

1

 

쓸쓸한 여름 

나태주 ​

 


챙이 넓은 여름 모자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빛깔이 새하얀 걸로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올해도 오동꽃은 피었다 지고

개구리 울음 소리 땅 속으로 다 자즈러들고

 

그대 만나지도 못한 채

또다시 여름은 와서

 

나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소

집을 지키며 앓고 있소.

 

 

 

 

 

 

 

2

 

여름 일기

이해인 ​


사람이 나이 들면

고운 마음 어진 웃음 잃기 쉬운데

느티나무여 

 

당신은 나이가 들어도 어찌그리

푸른 기품 잃지 않고

넉넉하게 아름다운지

 

나는 너무 부러워서

당신 그늘 아래 오래 오래 앉아서

당시의 향기를 맡습니다

 

조금이라도 당신을 닮고 싶어

시원한 그늘 떠날줄을 모릅니다

당신처럼 뿌리가 깊어

더 빛나는 시의 잎사귀를 달 수 있도록

나를 기다려 주십시오

 

당신처럼 뿌리 깊고

넓은 사람을 나도 하고 싶습니다 ​

 

 

 

 

 

 

 

 

 

3

 

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음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

 

 

 




 

4

 

한여름 저녁의 시

정연복 ​


초록 이파리들도 맥을 못 추게 했던 ​
한낮의 불볕더위 뒤꽁무니를 빼고 있다.

온종일 땀에 절었던 뺨에 팔뚝에 ​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참 시원하다.

여름도 한철 밉살스런 찜통더위도 한때 ​
저만치서 자박자박 가을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5

 

여름밤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두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담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6


여름밤

정호승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어머님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



 

 

 

 

 

7

 

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8

 

6월의 표정

고은영

 

늦은 밤 달무리진 하늘을 본다

의미도 모르는 슬픔이 열린다 ​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도회의 빌딩들 ​


인생을 건넌다는 건

의식 안에 배설되지 않은

외로움의 담담한 침묵을 ​


통증없이 받아들이는

또다른 통증의 쓸쓸함이다 ​


낮에 하늘을 구르던 무표정한 구름에 ​
벌써 유월은 소리없이 각인되어

슬며시 미소짓고 있었다 ​


시간을 입고 누운 유월은

침대에서 바라본

밤의 얼굴보다 더욱 환하다 ​

 

 

 

 

 

 

 

 

 

9

 

여름 아침

김수영

 

 

 

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 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취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

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른다

차차 시골 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뜨거워진 햇살이 산 위를 걸어 내려온다

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우에서

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

구별을 용서하지 않는 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고뇌여
강물은 도도하게 흘러내려 가는데

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

사람들이여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여름 아침에는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

단 한 장의 사진을 찍으리라 ​

 

 

 

 

 

 

 

10

 

초여름 ​

허형만

 


물냄새

비가 오려나 보다 ​

 

나뭇잎 쓸리는

그림자 ​

 

바람결 따라

흔들리고 ​

 

애기똥풀에 코를 박은

모시나비 ​

 

지상은

지금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에 대한 시 10편  (3) 2024.08.10
문정희 시인 소개와 시 소개  (0) 2024.08.08
시인 이용악 소개 및 시 소개  (0) 2024.08.05
박인환 시인 소개와 시  (0) 2024.08.03
한용운 시인 소개와 시 소개  (0) 202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