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용악 소개
1914년 11월 23일 함경북도 경성 군 경성면 수성동에서 이석준(李錫俊)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두만강 인근에서 소금 밀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이용악이 어린 시절에 마적의 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이용악의 시 <다리 위에서> 나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등에서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엿볼 수 있다.
1928년 부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4학년 때 중퇴하였다. 그 직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히로시마의 코오분(興文) 중학 4학년에 편입하여 1933년에 졸업하였고, 곧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하여 1년을 수료한 후, 1936년 조치대학 신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35년 월간지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같은 해 김종한과 더불어 동인지 《이인》을 발간하고 계속하여 《신인문학》에 「애소귀 언」, 「무숙자」 《신가정》에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조선일보>에 「임금원의 오후」, 「벌레소리」, 「북국의 가을」, 「오정의 시」
1936년에 <조선중앙일보>에 「다방」 《낭만》에 「오월」 등을 발표함으로써 탄탄한 기본기를 다진다. 이후 1937년과 1938년 연거푸 2권의 시집 『분수령』과 『낡은 집』까지 발표함으로써 풍부한 작가적 역량을 과시한다.
1939년 조치대학을 졸업하고 <인문평론>의 기자로 근무하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간당하자 1942년에 귀향한다. 광복 후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
1946년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시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중앙신문』 기자로 생활하였다. 이 시기에 시집 『오랑캐꽃』을 발간하였다.
1949년 시집 『이용악집』을 발표하였으나, 정부로부터 불온삐라 유포 혐의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그러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석방된다. 이후 남로당계의 임화, 오장환, 김남천 등과 만나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와 같은 시를 <조선인민일보>에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6.25 전쟁 도중 박태원 등과 함께 월북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남로당 계열이 대거 숙청당했고, 이용악도 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게 된다. 그나마 가벼운 처분을 받아 한동안 집필 금지를 당했다가, 이후에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시들을 발표해야 했다.
1971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문학적 표현력이 매우 우수한 시인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시, 월북 이후에는 북한체제 찬양시를 다수 창작하여 남한에서는 80년대에 연구가 시작되기까지 배제되었다.
시 소개
그리움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두산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짜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내리는가
낡은 집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 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세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엔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두만강아 너 우리의 강아
나는 죄인처럼 숙으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고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아모것두 바라볼 수 없다만
너의 가슴은 얼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다
다른 한 줄 너의 흘음이 쉬지 않고
바다로 가야 할 곳으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지금
차는 차대로 달리고
바람이 이리처럼 날뛰는
강 건너 벌판엔 나의 젊은 넋이
무엇인가 기대리는 듯 얼어붙은 듯 섰으니
욕된 운명은 밤 우에 밤을 마련할 뿐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 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말으고 얼음길은 거츨다
길은 멀다
기리 마음의 눈을 덮어줄 검은 날개는 없나냐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북간도로 간다는
강원도치와 마조 앉은
나는 울 줄을 몰라 외롭다
오랑캐꽃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슬픈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면 알아 못 볼
사람들끼리
비웃이 타는 데서
타래곱과 도루모기와
피 터진 닭의 볏 찌르르 타는
아스라한 연기 속에서
목이랑 껴안고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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