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밤
매월 셋째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약 2시간 한 시인의 시를 2편씩 가져오기로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 편씩 낭독하고 이야기 나누고 다 돌기를 마치면, 다시 한 편을 더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2026년 5월은 '박 준 '시인의 시를 읽는다







밥 먹고 가. 도라지 무쳐놓은 것도 좀 있는데 금방 차려줄게. 도라지 먹고 트림 안 하면 인삼보다 좋다고 하더라. 아니 그건 겨울 무였나. 하여간 내가 조금 전 깜박 잠이 들었다가 꿈을 꿨는데 안개 자욱한 해변이야.
사람이 하나 쪼그려 앉아 있었어. 얼굴은 안 보이고 뒷 모습만 보여. 몇 번 불러도 돌아보지를 않아. 그러면서도 머리도 긁고 종아리도 긁고 뭐가 있는지 몇 번씩 주머니도 뒤적이더라고. 참 나도 나지.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오기도 생겨서 몇 결음 뒤에서 기다리고 섰어.
그런데 요즘 내가 눈도 침침하고 다리도 아프고 하거든. 그게 꿈에서도 그러데. 한참 서 있다가 나도 쪼그려 앉았지. 그러니까 또 새로 기다릴 만하더라고. 올해는 봄꽃도 늦는다는데 사람 하나 기다리는 일이 뭐 어렵나. 그러다 네 소리듣고 깬 거야.
뭐? 바로 간다고 ? 밥 안 먹고?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받아. 나중에 네가 갚으면 되지. 괜히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 주머니에 넣어. 그럼 가. 멀리 안 나간다.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 중 "4월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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