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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숙 시인 : 커피를 내리며

허영숙 시인

커피를 내리며

허영숙 

 

 

 

커피를 내리는 일처럼

사는 일도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둥글지 못해 모난 귀퉁이로

다른 이의 가슴을 찌르고도

아직 상처를 처매주지 못했거나

 

우물 안의 잣대 품어

하늘의 높이를 재려한 얄팍한 깊이로

서로에게 우를 범한 일들

 

새벽 산책길

이제 막 눈을 뜬 들풀을

무심히 밟아댄 사소함까지도

질 좋은 여과지에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의 온도 차이로 성애를 만들고

 

닦아내지 않으면

등을 보여야 하는 슬픈 배경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슴 밖 경계선을 넘어와서

눈물 나게 하는 기억들

 

이 세상 어디선가

내게 등을 보이고 살아가는 사연들이 있다면

걸러내어 좋은 향기로 마주하고 싶다

 

커피 여과지 위에서

잊고 산 시간들이 따뜻하게 걸러지고 있다

 

 

  • 허영숙은 한국의 시인으로, 2006년 시 전문지 시안으로 등단한 이후 활동해 왔습니다.
  • 시집으로는 **『바코드』**와 『뭉클한 구름』 등이 있으며, 다양한 시와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