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최영미

바다, 일렁거림이 파도라고 배운 일곱살이 있었다
과거의 풍경들이 솟아올라 하나 둘 섬을 만든다.
드문드문 건져올린 기억으로 가까운 모래밭을 두어번 공격하다보면
어느새 날 저물어, 소문대로 갈매기는 철없이 어깨춤을 추었다.
지루한 비행 끝에 젖은 자리가 마를 만하면 다시 일어나 하얀 거품 쏟으며 그는 떠났다. 기다릴 듯 그 밑에 몸져누운 이마여- 자고 나면 한 부대씩 구름 몰려오고 귀밑털에 걸린 마지막 파도 소리는 꼭 폭탄 터지는 듯 크게 울렸다.
바다, 밀면서 밀리는 게 파도라고 배운 서른두살이 있었다
더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데 비가 내리고,
어디 누우나 비 오는 밤이면 커튼처럼 끌리는 비린내,
비릿한 한움큼조차 쫒아내지 못한 세월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밤이 깊어가고
처벅처벅 해안선 따라 낯익은 이름들이 빠진다.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치욕,
아무리 곱씹어도 이제는 고스란히 떠오르지도 못하는 세월인데,
산 오징어의 단추 같은 눈으로 횟집 수족관을 보면
아, 어느새 환하게 불켜고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죽음이여- 네가 내게 기울기 전에 내가 먼저 네게로 기울어가리.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발표.(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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