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 5편
소금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지금은 그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당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패랭이꽃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히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사과나무
아주 가끔은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사과나무밭
태양이 눈부신 날이어도 좋고
눈 내리는 그 저녁이어도 좋으리
아주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어도 좋고
사과나무처럼 늙은 뒤라도 좋으리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https://youtu.be/FKNwuJBrwWI?si=tdp2fyVGIybMUzk_
류시화 시인 소개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가. 1958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안재찬이다. '류시화'는 안재찬이 작품상에서 쓰는 필명으로 현재는 이 이름을 고정적으로 사용한다.
필생의 역작으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인디언 연설문집이 있다. 무려 페이지가 1000쪽 가까이 되는 백과사전급의 책이다. 그리고 수필 '나의 모국어는 침묵'은 미래엔의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
대광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활'을 통해서 데뷔했다. 원래는 본명으로 시 작품을 내었는데 1988년부터 류시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1991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996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2012년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을 펴냈다.
창작 이외에도 외국 시를 번역하는 작업도 겸하는 편으로 실제 본인은 책을 많이 독파하는 독서광이라고 한다. 그것도 원어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해외여행도 하는 편으로 특히 인도를 방문했었던 때가 많았다.
안재찬은 1988년부터 '류시화'라는 이름으로 주로 외국 명상서적을 번역하면서 다시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류시화가 다시 문학 창작 영역에 복귀한 것은 1991년 '그대가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출판한 뒤로, 류시화의 창작활동은 자신이 쓴 시를 출판사에 그대로 넘겨서 출판하는 스타일이었다.
즉, 문예지를 통해 시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비평활동을 거친 후 시집을 출판하는 통상적인 시작 활동이 아니었다. 따라서, 90년대 이후 문예지들이 류시화의 작품을 게재하지 않은 이유 역시 간단하다. 류시화가 자기 시를 문예지에 기고하질 않았다.(....) 문학잡지는 작가가 기고한 시를 싣는 잡지지 이미 출판된 시를 가져다 싣는 잡지가 아니다
90년대 이후 류시화의 창작활동에 대한 전문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문학 평론은 문예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저작권 등의 이유로 류시화의 작품은 문예지에서 비평하기가 어렵다.
류시화의 시 자체가 비유나 은폐를 중시하는 근현대 시의 기술적 흐름과는 많이 동떨어지기 때문에 류시화 시를 문학비평하는 평론가가 별로 없다고 보는 사람 또한 많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류시화가 문학계를 떠나 새로운 자기 자리를 잡은 것이지, 문단이 류시화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한 것이 아니다.
인도 여행기를 쓰기도 했는데, 대단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의 차원에서 인도를 묘사하고 소개해 놓았다. 사실 인도라는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겪은 이런저런 경험을 자기만의 긍정적이고 감상적 시선에서 해석한 책들은 서구권에서도 많았는데 문제는 이를 객관적인 여행 정보로 착각하거나 오독하고 여행을 갔다가 다른 차원의 문화 충격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류시화 등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 체험들이 인생에서 좋은 계기나 기억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기에 지금껏 일관된 태도로 인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또 그를 통해 만들어낸 다른 결과물들이 인도 여행과 상관없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좋게 이해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개인의 체험일 뿐이라는 점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류시화의 필력이나 인지도는 인도를 방문하며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1997년)', '지구별 여행자''를 비롯한 관련 저작으로 얻어진 바가 크다고 평가하는 사람 또한 많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내 이름은 칸' 같은 영화나 인도 출신의 사람들이 직접 쓴 실생활을 기록한 작품들이 들어오기 전, 인도에 대한 환상을 널리 퍼트렸다.
특히 본인 스스로 인도의 유명한 명상가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도 알려졌던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하면서 그의 저작품들을 활발하게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하이쿠를 한국에 번역해서 소개하는 활동 또한 활발하게 한다. 배구를, 하이쿠를 접하고 나서 큰 문학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알기 쉬운 설명과 함께 잘 엮어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